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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억압의 달인에서 소통의 달인으로

“선생님, 아무것도 못 먹겠고, 잠도 못 잡니다. 온몸이 쑤십니다. 이러다 죽을 거 같습니다.” 오랜 세월 가부장적 남편 밑에서 화도, 억울함도 다 참으며 살아온 ‘언니’들의 말이다. 나 하나 참자며 살아온 세월이 하염없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의학적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화병의 신체적 증상들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분들이 많다.     고통과 상처를 피하고, 스트레스나 불안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이 사용하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것은 억압(Repression)이다. 수직적 인간관계가 강한 한국인들에게 이 방어 기제가 강화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평적 미국 문화와 달리, 수직적 한국 문화에서는 특히 억압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들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어느 세미나에 갔더니 엄마, 돈, 성공, 화, 이 네 단어로 문장을 만들라고 했다. 엄마는 따뜻하다. 돈은 필요하다. 성공, 하고 싶다. 거침없이 세 단어로 문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단어인 화는 아무리 해도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우리 마음의 표현이라는 강사의 말에, 이 화라는 감정이 그동안 얼마나 내 안에 억압되어 있었는지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후반 완전히 무너져버린 집안 형편 탓에 빚을 내어 입학한 대학, 여유 있고 화려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과외지도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날들, 씩씩한 척했어도, 학교 일찍 들어가 겨우 열일곱 어린 나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화가 났을까. 그러면서도, 나보다 더 힘들 엄마 생각에 억압해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감정들은, 내 무의식 속에 꽁꽁 숨어들면서 이후 나를 불안, 강박, 완벽주의에 시달리게 했다.     사모로 산 30여년 동안에도 가장 억눌렀던 감정이 바로 화였던 것 같다. 물론 좋은 분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늘 같은 사람, 같은 목사인 남편을 한때는 좋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일부 교인들, 그리고 그들의 터무니 없는 오해와 비방 때문에 마음은 피를 흘리는데도, 내 얼굴은 늘 웃고 있었다. 이렇게 억압된 화가, 내가 문장 하나도 못 만들게끔 무의식 깊이 억압되어 있었다.     심리치료사가 되고, 북클럽을 운영하며, 낯설었던 나의 무의식과 가까워졌다. 부인하고 있었던 무의식 속의 부정적 감정들을 직면하면서,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늘 불안한 꿈과 강박, 그리고 완벽주의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억울하고 화가 났던 나를 자주 위로한다. 잘 살았다 칭찬하며 자주 어깨를 두드려준다.     내 인생에 일어난 이해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더는 감정을 억압하지 말자. 가족이든 친구든 내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표현하자. 가까운 사람에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전문 상담가도 도움이 된다. 표현만 해도 가벼워진다. 견딜만해 진다. 억압된 감정 때문에 불안이나 화병에 시달리는 많은 분이, 이제라도 마음을 훌훌 표현하면서,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게 되시길 기도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달인 억압 부정적 감정들 고등학교 후반 화도 억울함

2024-04-24

[살며 생각하며] 불협화음의 합창

4월 초인데도 바람은 차다. 첼시에 있는 휘트니 미술관 앞은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패딩에 모자까지 쓰고 줄에 서 있다.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5층으로 올라갔다. 이 전시회를 협찬한 기관들의 이름이 쭉 씌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국 대기업의 로고 H자가 고딕체로 제일 크게 보였다. 한국이 문화 선진국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전시 제목이 ‘불협화음의 합창(Dissonant Chorus)’이다. 이번 전시를 맡은 큐레이터는 미국 방방곡곡에 소규모 갤러리를 찾아다녔다. 신예 작가들이 현시대 상황에 반응하는 목소리를 모았다고 한다. 인디언 아메리칸, 뉴욕에 거주하는 홍콩인, 남부에 사는 흑인 여자 작가 등 배경이 다양했다.   복도 벽에 AI가 그린 작품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만화의 캐릭터 같은 소녀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다. 머리카락과 옷소매를 누르면 작품이 변한다고 한다. 이것도 작품이 될까 하고 의아했다. 구상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니, 작품으로 여기는 요즘의 추세다. 벽을 돌아가니, 인공지능에 반대라도 하듯이 손으로 정성껏 그린 추상화가 매달려 있다. 찌그러진 세포 모양의 불규칙한 형체가 여기저기 빨래처럼 드리워져 있다. 천에 아크릴을 바르고 모아온 재활용품, 채취한 씨앗들을 붙였다. 그 위에 또 색을 바르는 몇 겹의 작업을 공들여서 했다. 수전 잭슨(Suzanne Jackson)은 평생 작업을 해왔지만, 80세가 된 지금에야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추상화는 고급 예술로 여겨졌고 더구나 백인 남자 작가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은 흑인 할머니가 그려서 보란 듯이 내 걸고 있다.     4층으로 내려갔다. 노란 네온 빛이 방 전체에 흐르고 있다. 천정에는 전기 망이 못처럼 가득 박혀있다. 전기선과 네온 빛이 사람에게 투과되어,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감시된다. 몸과 뇌에 충격이 가해지지만,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어느 날 내가 버섯을 샀더니 버섯 요리 정보가 유튜브에 떴다. 내가 피검사를 했더니 특정 수치를 올리는 방법이 떴다.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내 이메일로 오기도 한다. 누군가 나의 일상을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불편해진다.     저쪽 방에서 꼬불꼬불한 천 조각이 보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티피가 거꾸로 세워져 있었다. 요즘 세상이 거꾸로 간다는 은유다. 그 옆에서는 지금 문을 닫은 낙태업소의 사진과 전화와 이메일 기록, 폭력에 시달린 여자들의 사진 등 수천 개가 빼곡히 벽에 걸려있다. 낙태권이 허용된 것이 50년도 되지 않는데 최근 로대웨이드 판결 후 미국은 다시 낙태권 분란에 휩싸여있다. 몸은 고유한 개인의 영역인데, 여자의 몸은 항상 정치적 문제에 휘말린다.     마지막으로 작은 밀실 같은 어두운 방에 들어갔다. 상처 자국(site of wounding)이란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3D 컴퓨터로 자기 몸의 입체 모형을 만들고, 메탈과 유리로 만들어 샌딩을 했다. 뒤틀린 육체의 내부 모형이 작가의 고향인 홍콩에서 자라는 나무와 비슷하다고 한다. Aquilaria sinensis 라는 나무는 고급 향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나무다. 어린나무의 가지를 자르고 비틀고 사이사이에 곰팡이를 심는다. 상처가 감염되면서 트라우마를 받은 나무는 수액인 레진(resin)을 뿜어낸다. 이 과정에서 향기가 방출된다. 스트레스를 받은 나무가 향을 뿜어내듯이, 인간도 상처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나온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런 에너지가 모여서 불협화음 같은 신음을 내는 전시가 맨해튼 한가운데서 열리기도 한다. 미술관을 나오니 해가 올라가 있다. 허드슨 강에서 부는 바람이 훈훈해졌다. 만물이 화협하는 봄은 이미 와 있었다. 김미연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불협화음 합창 이메일 기록 낙태권 분란 휘트니 미술관

2024-04-12

[살며 생각하며] 표현해야 행복해집니다

얼마 전 한국의 심리치료사 장성숙 교수님의 동영상을 누가 보내주었다. 10만번 상담이라는 숫자가 놀라워 영상을 얼른 보았다. 40년 상담 후, 칠십이 되신 장 교수님이 느끼게 된 것은 단순했다. 정서의 문제가 나타나는 양상은 다양하지만, 그 다양한 양상의 뿌리는 단 한 가지라는 것이었다. 곧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들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내면에 자리 잡게 되는 분노’가 모든 불편한 정서와 행동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다.     나도 상담을 하면서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다양한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우리는 다 뭔가 억울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정신세계의 5%를 차지하는 우리의 의식이 부정하고 누르면서 못 느낀다 해도, 95%를 차지하는 무의식에는 반드시 저장되는 이 억울한 마음과 불만스러운 마음이, 분노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깊이 심어주면서 우리가 여러 가지로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어릴 적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기초 양육환경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셨는지, 우리를 잘 수용하고 사랑해주셨는지, 살면서 가난이나 이별 같은 힘든 현실은 없었는지, 이런 기초 환경으로부터 경험하는 억울함과 불만족스러운 감정들은, 의외로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어려서 가장 중요한 양육자인 엄마를 사별이든 이혼이든 일찍 잃은 사람들은, 어릴 적 든든한 의지처를 잃다 보니, 세상은 불안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내면 무의식 깊이 자리함으로써, 인간관계가 불안해지기 쉽다. 결혼도, 친구 관계도, 직장생활도 아주 불편해지기 쉽다.   장 교수님은 이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들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내면에 자리 잡게 되는 분노’는 자기표현을 통해서만 해소된다고 하신다. 이때, 진정한 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부정적으로 타인에게 표현되면, 성격장애나 공격적이 된다. 소심한 사람들은 분노를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이 우울증의 뿌리가 된다.     긍정적으로 솔직하게 감정을 직면하고 표현하기 어렵다 보니, 우리는 방어 기제(defence mechanism)라는 것을 종종 사용하며 살아간다. 우리 무의식이, 어떤 불안한 현실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불안과 고통을 최소화시켜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방어기제는 철저히 무의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이런 기제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방어기제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억압(Repression), 전치(Displacement), 투사(Projection), 합리화(Rationalization/Intellization), 승화(Sublimation), 해리(Dissociation), 행동화(Acting Out), 부인/부정(Denial), 병리적 신체현상(Conversion), 퇴행(Regression), 보상행위(Undoing),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동일시(Identification), 보상(Compensation), 감정의 격리(Isolation of Affect), 금욕(Inhibition), 내사(Introjection), 그리고 수동적 공격성(Passive Aggression) 등이다. 이 중 한국인에게 흔한 방어기제들을 다음 칼럼부터 나누기로 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표현 행복 우리 무의식 기초 양육환경 심리치료사 장성숙

2024-04-10

[살며 생각하며] 삼각화와 바운더리

A형, B형, O형, AB형 넷이서 밥을 먹고 있다. AB형이 갑자기 식당을 뛰쳐나간다. A형, 나 때문인가 하며 울기 시작한다. B형, 상관없이 계속 밥을 먹는다. O형은? 곧바로 AB형을 따라 나간다. 지난 칼럼에 나눈 혈액형에 대한 우스갯소리였다. 거기서 나의 마지막 질문, O형은 왜 뛰쳐나간 AB형을 즉시 따라 나갔을까는, 삼각화(Triangulation)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 O형 스타일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삼각화(Triangulation)라는 심리학 용어는 원래 가족상담치료에서 나온 개념이다. 예를 들어, 모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것을 당사자인 부부간에 해결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보니, 대신에 자기편이 될 듯한 자녀 혹은 부모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위안을 받으려 한다. 혹은 일밖에 모르는 남편의 일 중독을 남편과 직접 해결하는 대신, 자녀에게만 온갖 정성을 기울이다 나중에 실망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즉, 두 사람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가족 멤버를 끌어들여 갈등을 우회시키는, 가족관계에서 아주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 경우, 부부 사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자기편을 들어줄 것 같아 선택된 마음 약한 자녀는 희생양(scapegoat)이 되어 많이 불안하고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한쪽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집안에서 영웅(Hero), 귀염둥이(Mascot/Cheerleader) 역할에다 때로는 부모의 부모나 대리 배우자 역할까지 하려고 노력하다 힘들어진다. 결국 문제아가 되어 부모의 주의를 환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감정의 부담들은 자녀들의 분화와 감정발달에 큰 장애가 된다.     삼각화(Triangulation)는 가족 아닌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A, B, C 삼총사, 포에버 베프다. 그런데 어느 날 A와 B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어떻게 A가, B가 그럴 수 있어! 서로 말하기도 싫어진다. 그러면서 A와 B는 항상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의리형 인간, 아마도 O형 스타일인 C에게 의지한다. A는 A대로, B는 B대로 쏟아내는 힘든 이야기들을, C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묵묵히 받아낸다. 중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체한다. 아프다. 화병이 난다. 중재 노력은 반대 방향으로 튀기 일쑤다. 차라리 울고불고하더라도 A와 B 둘이 서로 갈등을 해결하도록 빠져주는 것이 낫다. 그것이 탈삼각화의 길이다.   아무리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다 힘들어지지 말고, 힘들 때는 뚜껑을 닫으라고 해도 못 하는 것은 바운더리 문제다. 요즘 금요 독서모임에서 Henry Cloud와 John Townsend 박사님의 저서 ‘Boundaries’를 읽고 있다. 착한 사람들, 그래서 바운더리 세우기에 실패하고 늘 남만 배려하다 힘들어지는 O형 스타일들이 우리 북클럽에 많았던 것 같다. 이들이 자신의 바운더리 문제를 깨닫고 나날이 해방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모두 가족, 친구, 직장동료, 일 등 영역에서 얼마나 바운더리 문제가 있었는지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예스만 하다가 화병 걸리지 말고 나를 지키는 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야 남도 도와줄 수 있다. 산소마스크도 내가 먼저 끼는 게 순서다. 이번 주 모임에서는, 한 주 동안 No를 몇 번 할 수 있었는지 나눠보아야겠다. (counselingsunflower@gmail.com)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바운더리 삼각화 바운더리 문제 바운더리 세우기 o형 스타일들

2024-03-13

[살며 생각하며] 마녀 할머니

한 달쯤 전에 손주 A가 말했다. “내 꿈에서 할머니가 ‘마녀’로 나왔어.” “뭐라고?” 마녀라는 말에 가슴이 움찔했다. “할머니가 내 친구에게만 잘해줬어.” 친구? 나는 A의 친구를 본 적도 없다. 현실에서 라이벌이 자기 누나일 텐데, 꿈에서 친구로 바뀌어서 나타난 것 같았다.   사실 A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건은 주로 학교에서 픽업한 오후 시간에 벌어진다. 나는 큰 애와 붙어 앉아서 숙제하고 책 읽고 산수도 한다. 작은 애는 처음 얼마 동안은 혼자 논다. 그러다가 누나의 숙제 시간이 길어지면 심술이 슬슬 나는 모양이다. 곁에 와서 쿠션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온갖 난리를 친다. 나는 시끄럽다고 할아버지에게 가라고 소리친다. 꼼짝 못 하고 피하던 아이가 요즘은 ‘이이이이 우우우우’ 이상한 소리로 나를 반격한다. 입을 오므리면서 놀리는 소리에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유치원에서 친구들끼리 저렇게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또 야단을 친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 느닷없이 A가 우리 집에 쫓겨왔다. 아들은 책만 열댓 권 들어있는 A의 백팩을 건네주며 말했다. “엄마 아버지는 TV 하루 정도 안 봐도 되지요?” 유치원에서 친구와 싸운 벌로 주말에만 허용하는 특권을 금지했다고 한다. “노 오 티브이, 노 오 게임, 노 오 캔디”라고 한다. 저녁에 아들네는 마침 선약이 있어서, 큰아이는 외할머니네로, 작은 아이는 우리 집으로 보내졌다. 벌을 받는 중이므로, 외가에 같이 보낼 수 없다고 한다.     A가 온 그 저녁에 남편은 자리를 피해주었다. 둘이 잘해 보란다. A는 여기에 누나가 없으니, 안심하고 자기 책을 들이민다. 애가 펼치는 슈퍼맨 책을 보았다. 무슨 이런 슈퍼맨 책이 있담? 애들 그림책이 간단하지 않았다. 수많은 슈퍼맨틀의 특징을 공학적으로 연구해 놓은 무슨 전문적인 도감 같았다. 자잘한 글씨로 기술한 캐릭터를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이거 할머니 못 읽어.” “왜?” “너무 복잡해.” “그냥 읽으면 되잖아.”   다행히 공룡 책은 읽어 줄 수 있었다. 그 책 역시 백과사전같이 두꺼웠지만, 그나마 아는 주제라서, 그럭저럭 같이 넘길 수 있었다. A의 백팩에는 한글 숙제도 들어 있었다. 연필을 엉성하게 잡고 ㄱ ㄴ ㄷ을 거꾸로 쓰는 아이를 보면서, A에게 책을 읽어준 적도, 숙제를 봐준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A는 할아버지 옆에서 단잠을 자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났다. 내 옆은 오지 않는 아이가 할아버지 옆에는 자석처럼 붙어 있다. 아침으로 요거트와 바나나를 넣은 오트밀 와플을 구워 주었다. 바싹하게 구운 와플이 과자 같은지 2개나 먹었다. 와플은 손녀가 좋아하지 않아서 만들지 않았던 메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손녀가 좋아하는 음식만 했던 것 같다. 큰아이가 잘 먹으니 작은 아이도 잘 먹을 줄 알았다. 작은 아이의 첫 마디는 무조건 “오 노”였다. “나 그거 싫어해.” “왜 싫어? 이거 먹어야 해.” 작은 애를 향한 내 목소리는 어느새 올라가 있곤 했다.   남편은 두어 번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A가 언제까지나 5살인 줄 알아? 자라서 중학생, 고등학생 될 텐데, 그때 어쩌려고 그래?” 키가 장대 같고 어깨가 우람한 A가 나를 본체만체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어이쿠, 큰일 났다. 지금이라도 만회해야 할 것 같다. 나의 기준은 큰아이에 맞춰져 있었다. 작은 애를 누나 옆에 붙어서 반쯤은 가려있는 애로 여겼던 것 같다. 처음으로 A의 작은 얼굴과 작은 키가 내 눈에 오롯이 들어왔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할머니 마녀 마녀 할머니 이거 할머니 숙제 시간

2024-03-07

[살며 생각하며] 소시지, 오이지. 단무지

A형, B형, O형, AB형 넷이서 밥을 먹고 있다. AB형이 갑자기 식당을 뛰쳐나간다. O형이 곧바로 따라 나간다. A형, 나 때문인가 하며 울기 시작한다. B형, 상관없이 계속 밥을 먹는다. 물론 진지하게 들을 필요 없는, 혈액형에 대한 우스갯소리다.     나온 김에 우스갯소리 하나 더. A형은 소시지, 소심하고 세밀하고 지X맞고(‘X’자는 상상에 맡김),  B형은 오이지,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지X맞고, O형은 단무지,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X맞고, 그리고 AB형은 지지지, 지X맞고, 지X맞고, 지X맞고라니, 물론 모든 혈액형의 문제점만 열거한 실없는 농담이니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AB형들은 좀 억울할 거 같다. 지지지라니. 실제 AB형들은, 사실 호기심 많고 창의적이며, 관찰력도 뛰어나고 사교적인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소견이 뚜렷하여 자신 있는 분야는 정말 확실하게 잘 해내는 성격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기에게 의지하는 사람을 절대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가는 의리파라고 하니, 진짜 좋은 혈액형인데 말이다.     소시지 A형도, 사실 싸우는 걸 싫어하고, 주위와의 조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는 분석이 있다. 뭐든지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심이 있는 타입이라고 한다. 상식과 룰을 중시하고, 책임감도 강한 아주 성실한 성격이라고 하니, A형들이 좀 더 많으면 세상에 평화가 올 것 같다!     ‘B형 남자친구’(2005)란 영화가 나올 정도로 비호감으로 여겨지는 오이지 B형, 바로 내 혈액형이닷! 내가 B형이라고 하면, 갑자기 남자 B형이 문제지, 여자 B형은 성격이 좋다며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 하지만 B형들은 사실 사교적이며 정직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한다. (적극 동의함!) 적극적이고 추진력 강하고, 겁 없이 모험을 잘하는 스타일, 그리고 생각나면 바로 행동을 먼저 하는 액티브한 성격, 게다가 친구도 쉽게 사귄다는 B형을 왜 비호감이라고 하는지!     끝으로 단무지 O형들도, 사실은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성격이다. 쾌활하고 너그러워서 사람들이 잘 따르며 설득력도 있다. 타고난 리더이자 외교관이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감 있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만, 말보다 행동으로 많은 사람을 도와준다. 낭만주의자이면서도 노력형 O형은, 지기 싫어하기 때문에, 일단 목표를 정하면 누가 뭐라든 해내고 마는 능력 있는 타입이라고 한다.     사실 혈액형은 단지 적혈구 표면에 A·B항원이 있는지, 혈액 속에 어떤 항체가 있는지에 의해 결정될 뿐, 혈액형과 성격의 과학적 인과관계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 말씀드리고 싶다. 미국 사람들은 혈액형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리고 성격은 혈액형 같은 기질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기질 플러스 부모의 양육 방식, 성장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요즘 많은 성격 테스트들이 존재한다. 백 퍼센트는 아니라도, 꽤 정확하다고 여겨지는 테스트들이 많이 있다. 나도 상담할 때, 아이와 부모의 MBTI 테스트를 활용한다.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자신의 양육 스타일을 이해하는데, 아이가 부모를 이해하고 자신 성격의 장단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모든 성격유형 이론은 이렇게 자신의 장점은 더 살리고 단점은 깨달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잠깐, O형은 왜 뛰쳐나간 AB형을 즉시 따라 나갔을까? 다음 칼럼에 계속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소시지 단무지 혈액형과 성격 소시지 a형 성격 테스트들

2024-02-28

[살며 생각하며] 가출을 출가로

전쟁을 일으키는 선인은 없다고 하듯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 논란이 있지만, 가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무력과 폭력에 자유 시민의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이기적 탐욕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인 자들은 이스라엘의 인간 청소를 비난하며 뉴욕시 등에서 시위를 벌이니 새우 싸움에 고래 등이 가렵다고 당장 뉴욕 시민은 불편하다.   미국의 정치는 양대 정당이라 하여 부유층 소수를 대표하는 공화당과 서민과 가난한 다수를 대변하는 민주당이 적당한 대립과 타협으로 이끌어 왔다. 그런데 근래 들어 자기만 우선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극단적인 자들이 전면에 나서자 나라는 두 세력이 대립하니 미국이 둘로 쪼개질 듯 시민의 스트레스가 커진다.   나라가 쪼개져 힘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극단적인 자들 대신에 상대를 인정하는 자들이 정치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데 현실은 오히려 극단적인 자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대립을 불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정치인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 도발을 서슴없이 하니 전쟁이 일어나고, 욕심 때문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탐욕이요 분노다.   어디서나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의 대립을 줄이려면 우리가 가진 탐욕을 줄여야만 한다. 탐욕은 그대로 두고 벌이는 딜은 설사 성사가 되었다 해도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유리잔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누구나 탐욕을 줄여야만 한다고 아우성이지만 본능적으로 보이는 탐욕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는 것.   자기 탐욕을 줄이러 떠나는 작업을 가출이 아닌 출가라 했다. 가출은 자기 탐욕을 줄이는 게 아닌 스트레스가 싫어 현장에서 떠나는 도망일 뿐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자기 집을 떠난 가출자가 적지 않은데 2500여 년 전, 석가모니가 성을 떠난 것은 가출이 아닌 출가라 하는 이유는 현실 도피가 아닌 고통의 현실을 행복한 인간으로,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한 떠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사회로 돌아온 그는 45년 동안 자신과 더불어 사회가 평화로울 수 있는 법을 세상에 전했다.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출가하지 않았더라도 부처님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되었을까. 아니다. 세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현장을 일단 떠나는 출가와 같은 행동이 있어야만 한다. 자기의 탐욕을 줄여 냉정히 현장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공부를 한 후 다시 사회에 돌아와 참여할 수 있으면 많은 문제가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출은 사회 문제를 증가시키는 악이지만 출가는 사회 문제를 풀 수 있는 강력한 선의 무기다.   지금 세계는 탐욕에 의한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불만이 많은 젊은이의 극단적인 폭력이 늘어나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런 젊은이들의 일탈이나 가출을 줄이고 삶의 목적을 바르게 바라보도록 하는 일주일 내지 한두 달 단기 출가와 같은 것을 사회에 만들 수는 없을까. 그들이 자신을 바르게 돌아볼 기회를 줄 수만 있으면 세계는 그만큼 편안해질 수 있을 터인데.   카필라 왕국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고통 대신에 평화를 전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출가한 사건은 21세기 오늘에서도 너무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절에서는 출가일을 잊지 않고 기린다. 그 출가일은 음력 2월 8일, 올 양력으로는 3월 17일이 된다.   청소년 가출과 총기 사건과 같은 일탈적 행동은 사회 전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들과 사회를 위해 단기 출가와 같은 장치가 많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홍효진 / 보리사 신도살며 생각하며 가출 출가 청소년 가출과 사회 문제 단기 출가

2024-02-22

[살며 생각하며] 사랑의 개미들을 보내어 주소서

인생의 여정 중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힘센 세상 경제의 개입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성정이 여린 인성일수록 이런 인생 중에 만나게 되는 힘 넘치는 경제적 개입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누가 노숙인의 삶을 기대했겠느냐마는 이런 삶의 거센 개입에 여리고 착하여 대항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게 되는 뉴욕의 노숙인 형제, 자매들이 생각보다 많다.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고 잘 대처하며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런 삶의 횡포 아래 울고 있는 이들을 돌보고 먹이고 사랑하라고 하셨다.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비단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은 아니셨다.     14년 전부터 노숙인 섬김의 집, 사랑의 집은 노숙인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서 시작된 사역은 전혀 아니었다. 이런 면이 나를 뭉클하게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항상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챙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신 시작부터 천하고 천한 곳을 찾아 말구유에서 출생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로 인해 결별된 고아들인 인간을 사랑하셔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으시고 이 땅의 가장 천한 곳으로 오셨다.     14년 전 처음 플러싱 바우니 스트리트 지하에 위치한 노숙인 셸터를 방문하면서 강력하게 느끼게 된 그곳은 예수님이 오신 마구간이었다. 정확히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명령의 순종, 사랑이 폭발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는 말로만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제자가 아닌 노숙인들과 함께 지하실에서 기거하며 수족을 들며 섬기며 같은 환경 속에 삶으로 실천하는 부부 전모세 원장과 그의 전성희 사모가 있었다. 그 마구간 안에서 환하게 빛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맞다. 그래서 이들이 노숙인 셸터의 이름을 사랑의 집으로 지었나 보다.     한 그릇의 식사량을 가지고 10여 명과 함께 나누어 먹는 그런 사랑이 넘쳐나는 셸터였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사랑의 집에서 기거하다 운명한 형제의 유골을 가지고 한국으로 방문하여 안장한 뒤 귀국을 하신단다. 겨우겨우 비행기 여비를 마련하여 그 자금을 통틀어 사망한 노숙인이 조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그 한마디의 말을 어떻게 하든 지키려고 다녀오신단다. 이런 대책이 서지 않는 희생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주의 제자들이 하나둘 모여서 이사회라는 도움동아리를 만들었다.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메추라기와 만나 같은 간헐적인 도움을 가지고 아끼고 아껴서 노숙인들과 함께 나누는 사랑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사회에선 아침이슬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한 달에 자기의 한 끼 외식비를 절약해서 한 달에 25달러, 1년에 300달러를 돕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랑의 집은 목사님들이 사역의 일환으로 섬기는 노숙인 셸터가 아니기에 일종의 외형적인 신뢰감이 충분한 그런 셸터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사회적인 조직인 교회, 기업, 독지가들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이사들이 부족한 도움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식생활 걱정은 하지 않게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도한다. 주님, 인생을 살아가다 잠시 역경 앞에서 주춤 무릎을 꿇은 이 노숙인들을 위해 사랑의 개미들을 많이 보내 달라고. 이 아침이슬 프로그램으로 사랑의 집 노숙인 셸터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침이슬, 사랑의 개미 회원과 이사들이 많아지게 도와주시라고.     14년 된 노숙인 셸터 사랑의 집은 최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동포사회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집의 진짜 모습이다. 많은 뉴욕의 노숙인 셸터가 있지만 상 달라고 한 번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면밀히 조사하여 노숙인들을 향한 그 넘치는 진짜 사랑을 인정받은 사랑의 집. 달랑 한장의 상장이지만 조국의 대통령이 인정해주셨다는 그 인정 때문에 힘을 내고 다시 일어서는 전모세 원장.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정 앞에 울고 노숙인의 눈물 앞에 속절없이 가슴을 치며 무릎으로 눈물로 주님께 부르짖는 진짜 사랑꾼 전모세 원장을 처음부터 알게 된 나는 정말 그 사랑의 참 증인이다. 사랑의 집(718-216-9063), 아침이슬 후원 담당자 김혜선 이사(917-902-6585). 황규복 / 장로·사랑의 집 이사·뉴욕한인장로연합회장살며 생각하며 사랑 개미 진짜 사랑꾼 아침이슬 사랑 순종 사랑

2024-02-21

[살며 생각하며] ‘육체적 젊은이, 정신적 젊은이’

보다 보다 못 참을지경이 돼야, 발을 질질 끌며 찾아가는 미용실, 지난 월요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미용실 가는 것을 즐긴다는데, 내게는 버티다 버티다 찾아가는 곳이 미용실이다. 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만 염색해도 되던 앞머리가, 이젠 아무리 검은 립스틱을 마구 문질러대도 흰머리 감추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삼사 개월 한 번은 미용실을 가야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머리는 왜 그렇게 감기고 또 감기고, 뭐로 싸매놓고 타이머 앞에 앉아 기다리게 하고, 에휴, 내게는 아주 고역스러운 시간이 미용실에서의 두세 시간이다.     그날따라 모처럼 한가한 미용실에서 염색한 후, 샴푸만 하면 되지 또 뭔가를 바르고, 꼼짝 말라는 듯 머리를 샴푸대에 젖혀놓는다. 한쪽에서는 어느 할머님과 원장님의 대화가 한창이다. 우리 원장님 참 기운도 좋지, 머리하시는 와중에 종일 손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력이 대단하시다. 얼핏 들으니 이 할머님, 지난주 LA를 갔다 오셨고 다음 달에는 두바이, 그리고 말레이시아어쩌구 하신다. 여행을 좋아하시나 보다 하고, 대화 내용에 별 신경을 안 쓰고 눈을 감고 있었다. 타이머 울리기만 기다리면서.   그러는 동안 할머님은 가셨다. 마지막 단계로 원장님이 내 머리를 다듬으면서, 그 할머니 이야기 들었느냐고 묻는다. 신경 안 썼다고 하는 내게 원장님이 천지개벽할 이야기를 전한다. 이 분이 6개월 전 일본에 가서 7조, 세상에 7조 개나 되는 줄기세포를 맞고 지금 회춘 중이시라는 것이다. 20년 전부터 아는 분인데, 지금 85세 이 할머님이 그 주사를 맞은 뒤 20년이 회춘하여 60대 피부와 몸 상태가 되셨다는 것이다. 관절도 낫고, 피부가 올 때마다 젊어져 오신다는 것이다. 오늘도 피부가 회춘하느라 근질근질하여 계속 긁고 계셨다고. 내 헤 벌어진 입에서는 그저, 오 마이 갓, 이 소리만 나왔다!   신나게 설명을 하는 원장님은, 미용실 남자 고객 중 하나도 작년에 이 줄기세포를 맞고 젊어졌다고 한다.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은 물론이고, 암 특히 난치라는 췌장암, 파킨슨, 관절염, 시력, 탈모까지 해결된다니! 갑자기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마구마구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근데 20년 젊어진다는 이 줄기세포 치료 비용은 무려 25만 달러! 그 할머님, 이 줄기세포 경험을 나누며 사람을 모집하러 그렇게 다니신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몇백개나 되는 줄기세포 클리닉이 있고, 여기 오는 환자의 90%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세계의 정·재계나 연예인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니! 돈만 있으면 늙지도 않는 세상이 된 건가?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가 이것? 살짝 혹하긴 했다. 확 집을 팔아? 그래서 쳐다보기도 싫은 메디케어 카드 반납하고 40대로 한 번 살아봐? 오 노, 하지만 이렇게 무작정 육체만 젊어지는 것도 문제란 생각이 곧 들었다. (물론 이런 데 쓸 25만 달러라는 돈이 내게 없어서 든 생각일 가능성도 크다!)     육체의 노화가 해결된다 해도, 진짜 중요한 것은 정신적 노화의 문제다. 나이 들며 점점 나태해지고 아무것에도 뛰지 않는 정신적 심장의 노화, 점점 폐쇄적이 되고 좁아져만 가는 정신적 혈관의 노화, 나이 들었다고 남의 입장 못 보고 자신만 바라보는 정신적 노안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건가? 아, 아, 정신 차리자! 죽을 때까지 정신적 젊은이로 살기 위해,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책 읽기에 아주 좋은, 눈 오는 아침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젊은이 육체 정신적 젊은이 육체적 젊은이 정신적 노화

2024-02-14

[살며 생각하며] 삼각관계

  추운 정월에 친구는 가벼운 트렁크를 하나 끌고 우버에서 내렸다. LA에 사는 친구는 맨해튼에 있는 아들을 보러 왔다. 아들 아파트에서 하루 이틀을 보내더니 별안간 우리 집에 오겠다고 했다. “어디 이불집 없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이불 타령을 한다. “J의 이불이 다 해졌지 뭐야.” J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애지중지하는 아들이다.     친구를 태우고 이불집으로 향했다. 마침 극세사 이불이 세일 중이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하얀색 이불과 침대에 까는 패딩까지 세트로 샀다. “여친이주말마다 오는 모양이야. 그래서 피난 왔어.” “J의 결혼은 네가 바라던 일이잖아.” 그런데 친구의 얼굴이 심란해 보였다. 여친을 한번 보자고 했더니, 아들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한다.     “뭐, 강아지 때문이라고?” 나는 놀라서 물었다. 여친이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강아지는 잠시도 제 엄마를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둘 사이에 끼어서 자기만 예뻐해 달라고 틈을 주지 않는 모양이다. 둘이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오면 마루에 오줌을 여기저기 싸 놓고, 여친이 잠깐 밖에 나가면, 자기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J의 눈치만 본다고 한다. 강아지는 자기 엄마에게 나타난 낯선 남자가 싫고, J는 자신이 강아지 뒤로 밀리는 느낌인 것 같았다. 결국 강아지 때문에 두 사람은 대판 싸우기까지 했단다.     강아지는 몸도 성치 않다고 한다. 슬개골이 탈골되어 수술해야 하는 모양이다. 지난 연말에 여친이 강아지를 데리고 한국의 부모님 집에 다녀 왔다. 본가에는 엄마의 고양이가 있다. 나이 많은 고양이가 팔랑대는 강아지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던지, 엄마가 어서 데리고 미국으로 가라고 했단다.     “나 같으면 한국에서 강아지 수술도 시키고 당분간 맡아줄 텐데. 남친이 싫어한다는데.”     “그 엄마도 내 고양이가 먼저겠지. 딸의 강아지보다도.” 친구의 걱정을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그러잖아도 드라마로 빗어지기 쉬운 사람들. 그 사이에 개와 고양이까지 등장하여 갈등을 보태주고 있다. 특히 요즘 젊은 남녀는 ‘밀당’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연애도 사절하는 분위기다. 결혼은 물론 자식까지 안 낳는 세상에서 개와 고양이가 호사를 누리고 있다. 친구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되었다.     차가운 뉴욕 날씨 탓인지 친구는 감기까지 걸렸다. 따끈한 만둣국을 훌훌 마시면서, 이제는 아들 집에 덜 와야겠다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주말이 지나자, J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우버 불렀어요. 3분 후에 도착한대요.” 친구는 자신의 한두 옷가지가 든 트렁크는 이미 싸 놓았다.     세탁기에 돌린 이불은 보송보송하게 잘 말라 있었다. 친구는 이불을 착착 개어서 케이스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정작 여친이 강아지를 놓고 오니까 J가 강아지를 보고 싶어 하는 거야.”   친구는 이제 삼각관계가 해결될 것 같다면서, 이불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삼각관계 강아지 수술 강아지 때문 어디 이불집

2024-02-08

[살며 생각하며] 불안한 아이들(2)

최근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며, 머리가 아프다며 데이케어 가기를 거부한다는 네 살짜리 A, 원래도 데이케어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처음에는 매일 떨어질 때마다 울어, 떼어놓고 일을 가야 하는 싱글맘의 마음을 아주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엄마와 헤어지고 나면 선생님들과 시간을 잘 보내던 아이였다. 이렇게 매일 아프다며 엄마와 안 떨어지려고 하는 것은 약 한 달 전부터라고 했다.     혹시 A의 분리불안이 아빠와 상관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는 얼마나 자주 A를 만나나요?” “원래 매주 토요일 아이를 데려가 일요일 저녁에 데려오기로 되어 있어요.” “아빠가 약속을 잘 지키나요? A는 아빠 만나는 것을 좋아하나요?” “A는 원래 아빠를 아주 많이 좋아했어요. 어릴 때도 아빠가 많이 놀아주고 내가 일이 늦어지면 아이를 자상하게 많이 돌보았거든요.”     “이혼 후 처음 아빠가 집을 나갔을 때 A도 아주 힘들어 했겠네요.” “그때는 겨우 두 살이어서 그랬는지 전보다 많이 울고 나한테 매달리기는 했어도, 데이케어도 그런대로 잘 다니고 큰 문제는 없었어요. 아빠가 처음에는 약속을 잘 지켜서, 주말에는 꼭꼭 아빠와 시간을 보냈어요. 크면서부터는 아빠 만나는 주말이 기다려진다고 늘 말하곤 했어요.” 말하던 엄마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아침마다 아프기 시작한 때가 아빠와 상관이 있는 거 같네요.” 이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순간 분노가 확 느껴졌다. “사실 아이 아빠가 자기 여자친구와 작년에 살림을 합쳤어요. 4살 난 아이가 있는 여자예요. 그러면서 종종 A를 안 데리러 오는 주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A가 많이 기다렸을 텐데요.” 엄마의 얼굴은 이제 노골적으로 분노를 나타내고 있었다. “마음이 변한 거 같아요. 아무리 독촉을 해도 온갖 변명을 하며 A를 안 데리러 오기 시작했어요. 나도 주말이라도 내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일주일 내내 아이에게 매여있으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요.” 아빠가 두 시간 거리로 이사를 한 두 달 전부터는 이제 A를 만나는 것을 거의 중단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면서, A도 A의 엄마도 둘 다 너무 안쓰럽기만 했던 첫 세션이었다.   부모가 훌륭하든 부족하든,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온 우주가 된다. 대부분의 우리는,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의 막중함과 숭고함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어느 날 부모가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온 고귀한 생명에게 일생 영향을 끼치는 그들의 전 우주가 된다. 갑자기 우주 한 부분이 무너져버린 어린 A에게, 아빠가 사라진 우주는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도 주말마다 느끼는 아빠의 사랑이 그 아이의 불안한 우주를 그럭저럭 지탱해주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다 아빠가 아주 사라져버린 지난 두 달, 그녀의 작은 우주는 아빠가 안 보이는 슬픔의 안개로 가득 차고, 아빠가 다신 안 올까 봐, 자신을 영영 떠나버렸을까 봐, 불안하고 두려울 때마다 무서운 천둥 번개가 마구 내리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다 보니 옆에 있는 엄마와도 더 떨어지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바람이, 이 아이에게 두통이나 배 아픔 같은 정신적 이유로 인한 신체 증상(psychosomatic)들을 나타나게 했다.     A 엄마도 이제 A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고 매달리는지(clingy) 그 가장 큰 이유가 깨달아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힘든 감정을 공감해주고 엄마는 엄마대로 지원 해주면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A의 분리불안을 치료해보기로 하였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불안 자기 여자친구 일요일 저녁 무의식적 바람

2024-01-31

[살며 생각하며] 불안한 아이들 (1)

일 년 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을 출간한 후, 올해에는 심리치료 중 만난 클라이언트들의 사례에 근거하여 정신건강, 특히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되는 전문적 심리학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물론 내담자의 아이디에 관한 구체적 정보들은 아주 아주 많이 변경되어 기술될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읽을 때 아는 사람 같더라도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며, 그리고 한 인간으로 일생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어려움은 생각보다 아주 유사하다. 그래서 그동안 상담했던 여러 사례를 통해, 살면서 부모로서나 아니면 한 인간으로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그럴 때 어떻게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은 것, 이것이 나의 2024년 목표 중 하나다.     내 인생 첫 번째 산에서 굴러떨어졌던 그 어려운 시기에, 길을 잃고 우울증을 겪다 두 번째 산을 오르며 공부하게 된 심리치료사의 길, 이 길에서 이제는 나처럼 잠시 길을 잃고 힘들어하는 수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난다. 첫 사오년은 학령기 아이들만 전담하는 프로그램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부모 상담을 아이들 상담 못지않게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들이 좋은 부모가 되도록 도와주었을 때, 아이들의 정신건강은 저절로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는 미팅할 때마다,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부모 상담을 의무적으로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다.     아이들의 상담 결과는 부모님 협조와 변화 여부에 완전히 비례했다. 진짜 변해야 할 사람은 부모들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아이만 고쳐달라는 식의 부모들을 만나면 진짜 힘들다. 결국 부모가 나를 안 만나면 아이 상담을 못 하겠다고까지 초강수를 두어야만 마지못해 상담에 임하는 부모들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상담에 응하더라도, 자신이 아이의 정신건강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었는지 깨닫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바쁜 부모들의 나르시시즘은 나를 항상 힘들게 한다.     나의 첫 클라이언트 A는 네 살짜리 백인 여아였다. A는 자신이 불안에 떨던 이 초보 치료사의 첫 클라이언트였음은 전혀 몰랐으리라. 인형같이 예쁜 눈을 가진 이 조그만 아이가 무슨 일로 심리치료를 받으러 왔을까, 초보 치료사는 매우 궁금했다. 놀이치료실 한쪽에 A를 놀게 하고 다른 쪽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엄마의 얼굴에는, 나 지금 아주 힘듦, 이렇게 쓰여있었다. 싱글맘이라는 것을 최초 면접 서류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이 젊은 엄마의 버거운 삶의 무게를 함께 느끼면서, 무엇 때문에 상담을 요청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A가 아침마다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다면서 유치원에 안 간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보내고 일을 가야 하는데 요즘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소아과에도 데려갔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면서, 상담을 권해서 오게 되었다고. 전형적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 증세 같았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는 이 엄마와 인형같이 예뻤던 나의 네 살짜리 첫 클라이언트 A의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 계속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불안 부모 상담 부모님 협조 전형적 분리불안

2024-01-17

[살며 생각하며] 70년만의 졸업

나이 꽤 드신 분들이 공부하시거나 무엇을 추구하는 스토리는 항상 내 마음을 뛰게 한다. 81세 나이로 중학교 1학년 재학 중이셨던 박은순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을 때나, 5년간 무려 960번 도전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전북 차사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랬다. 지난주에는 한국의 만 87세 김금자 할머니가 나를 또 한 번 유쾌하게 놀라게 하셨다.     1936년생 김금자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45년 해방되면서 2년간 학교에 다닐 수 있었는데 그나마 6·25 전쟁이 터지며 또 중단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 중 양부모님을 다 잃고 오빠와 단둘이 남은 할머니는, 공부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셨다고 한다. 할머님의 공부는 이렇게 1950년에 전쟁과 함께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후 결혼해 1남 3녀를 기르면서도 늘 학교 다니는 학생을 보면 부러워 눈물을 훔쳤다는 김금자 할머님은, 80세 넘어 우울감에 시달렸다. 중학교를 좀 다녀보면 우울감에서 벗어날 것 같아 알아보니, 초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하다 하여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하셨다.     이렇게 정부 운영 18세 이상 대상의 초중 학력프로그램 학교에서, 아니면 일반 학교에서도 손주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한국 중년과 시니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한국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이렇게 할머님은 입학 6개월 만에 초졸 자격검정고시를 봤다. 수학 문제들을 보니 어지럽기만 했다. 그러나 2020년, 초졸 자격고시 역사상 최고령인 84세의 나이로 첫 시도에 처억 합격하셨다. 70년 만의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질 팔십 대 중반에, 왕복 세시간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공부하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듬해 중졸 검정고시에도 합격하신 할머님은 건강이 허락한다면, 대학까지 가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이 꿈도 이루어졌다. 할머님은 2023년 전문대 두 곳에 합격했다. 사회복지학과였다. 87세에 대학생이 된 것이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아니, 공부에는 때가 없다. 내가 사년 째 이끄는 Sunflower English Book Club의 연령대도 아주 다양하다. 40대 초반부터 70대 초반의 분들이 참여한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가장 피곤해서 누워 쉬고 싶은 시간인 저녁 8시나 9시에 줌 앞에 모이는 이분들, 그리고는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로 된 책을 함께 읽으며 공부하는 이분들이 나는 매우 매우 자랑스럽다. 아프면 비디오 끄고 소리라도 들으며 참여하는 이분들, 아이들 대학에 다 가고, 직장을 은퇴하고, 마침내 삶에서 자기 시간이라는 게 생겼을 때, 무엇을 할까 하다가 북클럽의 문을 두드렸다는 이분들, 마음도 비슷하고 열정도 비슷한 이 길벗들과 또 축복 되게 한 해를 맞는다.     지난주 북클럽 연말 파티에서, 한 분이 처음으로 장문의 편지를 두 딸에게 써 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남편 말에 그저 맞추어 살다 공황장애를 경험했던 분은, 북클럽에서 배운 ‘I’ 메시지로 자신의 심정을 잘 전달하여 남편과의 사이가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성숙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나이 들수록 더 공부해야 함을 느낀다. 공부하는 인생에 나이란 없다! 60년 만에 돌아온 청룡의 해에, 우리 모두의 비상을  꿈꿔본다! (counselingsunflower@gmail.com)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졸업 초등학교 졸업장 인근 초등학교 김금자 할머니

2024-01-03

[살며 생각하며] 노다지 주워오기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형님뻘 되는 지인 부부께 만나자고 연락드렸다. 그 댁 남편이 이가 안 좋으니 두부 종류로 점심을 먹자고 하신다. 그분들의 기색이 어딘지 불편해 보였다. 사연인즉슨, 남편분이 평생 모은 애장품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로 이사 가니, ‘애기’들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한다. 눈을 껌뻑이며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그거 제게 주세요.”     다음 날, 우리 집 차고에 상자가 몇 개 들어 오더니, 다음 날에 서너 상자가 또 왔다. 차고에서 지하실까지는 층계가 있어서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허리에 복대를 두른 남편 입에서 끙끙 소리가 튀어나왔다. 왜 남의 것을 받아서 이렇게 고생하는지. 버리는 것, 굴러다니는 것이 남편 눈에는 노다지로 보인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장난감이라곤 깡통 비행기 하나였다고 한다. 그나마 형들이 가지고 놀다 버린 것을 잘 주워야 했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10월 말경, 앞집의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떨어졌다. 남편은 처음에는 우리가 먹을 정도만 줍는다고 한 두 번 나가서 은행을 긁어왔다. 그러다가 아침이면 또 떨어져 있는 은행이 아까운지 매일 앞집의 나무 주위를 서성거렸다. 골목 사람들은 흉한 냄새가 나는 터진 은행이 차 바퀴에 묻을까 봐 비켜서 다니곤 하다가, 고맙게도 나무 밑을 청소하고 있는 남편을 한 번씩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봉사 정신이 뛰어난 이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쓸어온 은행이 커다란 원통 몇 개에 가득 찼다. 흙과 누런 잎과 터진 열매가 뒤섞인 쓰레기처럼 보였다. 남편은 지인들에게 깐 은행은 아니지만, 까서 드시겠냐고 물었다. 팔순의 어떤 분은 아내의 해소병을 은행으로 고쳤다고 반색했다. 또 누구는 은행잎이 텃밭에 짐승을 못 오게 한다고 잎도 함께 달라고 했다. 그렇게 차고 앞에 쌓여 있던 은행 더미는 11월 내내 조금씩 사라졌다. 남편은 부지런히 ‘택배’를 다녔다.     며칠 전, 식사를 같이한 형님 부부도 실은 마지막으로 남은 은행을 드린다고 만난 것이다. 은행을 다 처분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남의 이삿짐을 주워서 왔다. 남편의 공간인 지하실에서 쿵쾅 드르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져온 물건을 진열할 장을 만들고 있는 눈치다. 그날 이후, 지하실에서 아침부터 들려왔던 트로트 곡은 사라졌다. 옥경이, 안동역 대신에 부드러운 재즈 피아노 소리가 층계를 타고 올라왔다. 오페라, 피아노곡, 첼로 곡, 오케스트라 등등 분류가 된 2000개의 CD가 지하실로 들어왔다. 쓰레기통에 박힐 뻔한 누군가의 평생에 걸친 열정도 같이 묻어서 들어왔다.     “형님, 제가 잘 보관할 테니, 애들이 보고 싶을 땐 언제든 오세요.”     그분의 어두웠던 얼굴에서 미소가 퍼져 나갔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은행 더미 오페라 피아노곡 형님 부부

2023-12-17

[살며 생각하며] 맞춤형 자녀교육- 사교형

남편은 전형적인 주도형이었다. “할 수 있다”를 늘 부르짖는 리더였는데, 집에서는 그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큰아들과 많은 갈등이 있었다. 성적 관리, 생활 습관, 진로에 이르기까지 아빠와 아들은 참 많이도 부딪혔다. 아빠는 인생 선배 아버지의 충고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 아들이 이해가 안 되었고, 아들은 자신이 알아서 할 일들을 왜 아빠가 설계하는지 화가 났다. 원래 아들은, 어려서부터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지만, 한 번 확신하면 모든 것을 거는 스타일이었다. 세월이 지나 많은 체험을 거쳐 성숙해진 아들은, 인제 와서는 아버지가 권했던 삶의 원칙에도 충실한 삶을 스스로 사는 것을 본다.     주도형 부모로서, 주도형 자녀를 기르고 계신다면? 불안해도, 뻔히 결과가 보이더라도, 일단은 믿어주고 스스로 계획해서 해보도록 격려하고 지켜봐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다리며 지켜보는 것은 부모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믿어주는 그 부모를 신뢰하는 자녀라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하면서 훌륭한 지도자로 자라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설명한 주도형인 담즙질에 이어, 사교형인 다혈질(Inspirational)이 있다. 다혈질이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사교형은 남과 잘 어울리는 큰 장점이 있는 기질이다. 요즘 사회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녀들이 많은데, 이 사교형 자녀들은 낙천적이고 명랑하며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잘 사귀고 남과 잘 어울린다. 이 기질은 기분파이긴 하지만,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하여 오래 집중을 못 하는 단점이 있다. 감정에 휩쓸려 자주 불안하고 화를 쉽게 내기도 하지만, 인정이 있어서 지난 일은 쉽게 잊고 현재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기질의 자녀들에게는 안정된 가정 분위기가 아주 아주 중요하다.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큰 동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칭찬해주고 말,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중 그들의 사랑의 언어를 통해 사랑을 많이 표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제와 절제의 훈련을 시키고, 가정에서 자녀와 합의하여 만들어진 규칙들을 지키도록 함으로 좋은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모든 자녀가 그렇긴 하지만 특히 사교형 자녀들에게는 좋은 롤모델이 필요하다. 사교형 자녀들을 부모가 지나치게 통제하면 아이들은 잠재력 개발의 기회를 잃게 되고, 감정적이 되면서 집안이 자칫 전쟁터가 될 수 있다.   사교형 자녀들이 갈망하는 것은 좋은 평판을 받는 것, 좋은 인간(친구)관계, 다른 사람을 돕는 일, 다른 사람들이 잘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일, 그리고 말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다. 이들은 공평하면서도 친구 같은 지도자나 부모와 사이가 좋다.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부모,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주고 노력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부모를 좋아한다.     사교형 자녀들은 시간 관리와 기한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기보다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이들이 놓치기 쉬운 생각이다. 또한 너무 자신의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영향력을 오히려 향상할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이런 기질의 자녀들은 대중 앞에서 말이나 연기를 하는 직업, 상담가, 교사, 사회복지사, 그룹 리더에 적합하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자녀교육 맞춤형 맞춤형 자녀교육 사교형 자녀들 주도형 자녀

2023-11-23

[살며 생각하며] 지금 그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오래전, 그러니까 한·중이 국교를 수립하기 전 1985년 중국 출장 갔을 때 이야기다. 같은 동네 지인 한 분이 북경에 가면 꼭 만나보고 오라며 전화번호를 하나를 손에 쥐여주었다. 해방 전 동아일보 상해 특파원으로 일하셨던 형님인데 북한을 조국으로 택하면서 안 계신 분으로 여기고 산다는 아픈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홍콩에서 배를 타고 밤새 달려 도착한 곳은 중국의 최남단 샤먼이었다. 맑은 날 새벽이면 대만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로 본토와 가까운 곳으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대만의 많은 기업이 들어와 공장을 돌리고 있던 곳이다. 당시만 해도 공산국 하면 머리에 뿔 달린 사람이 사는 곳인 양 외면해오던 정서라 머무는 내내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아무튼 3일간의 샤먼 일정을 잘 끝내고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무리 국내선이라지만 명색이 중국 수도를 오르내리는 비행기 안인데 시골 버스처럼 북새통이다. 좌석에 앉은 아낙네의 머리 위로 짐보따리도 보였고 엄마 아빠의 무릎에 앉혀 가거나 간간이 가슴을 열고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조차 보여 민망하였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명장면은 천상의 식사 때다. 한국 비행기처럼 쇠고기, 닭고기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는 즐거운 선택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차마 바퀴 달린수레를밀고 온 여승무원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승객들의 무릎을 향해 포장도 안 된 닭 다리를 던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북경에서 찾은 그분의 집은 키보다 높은 담장을 낀 솟을대문 안 작은마을에 있었다. 중국이 지주들의 집을 빼앗아 수십 개로 분할해 살게 했기 때문이란다. 어르신도 집안 작은 공터를 불하받아 부엌 딸린방 한 칸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날 일제 치하에서 나라 없는 백성이 당한 설움, 해방 후 북한을 택한 속사정은 물론 김일성의 초청으로 방문할 때마다 영웅훈장과 흉장들을 수없이 하사받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참 후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니 부인께서 ‘후라쉬’을 챙겨 대문 밖 공터로 안내한다. 아하! 말로만 듣던 중국여행 시필수지참물우산과 신문지가 요긴한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7년! 1992년 한·중이 외교관계를 맺은 가을 그분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그때와 달리 숙연함 속에 눈가에 서리는 눈물과 함께 종래는 금이야 옥이야 했던 훈장과 흉장들을 통째로마당 저편으로 던지며 “속고 살았다”를 반복하셨다.   왜 뜬금없이 돌아가신 중국 동포 이야길 하느냐고요? 그분의 이야기가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나아가 70년 전 러시아인으로 사시다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가 어렵게 사셨던 홍범도 장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 이야기는 2년 전 9월 본란에 ‘홍 장군에 덮어씌우려는 악의 인션티브’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홍 장군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모셔온 뒤 대전현충원에 봉안한 것을 보수 만화가 윤서인이라는 사람이 ‘홍 장군이 공산주의 투사’라며 ‘문 씨 미쳤다’고 맹비난하는 것을 보고 역사적 사실과 함께 반박 글을 쓴 것이다.   돌이켜보면 일제 치하에서 한 분은 중국 땅에서 살기 위해 북한을 조국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고, 한 분은 일본의 공적 1호, 요주의 인물로 낙인되어 중국 땅에서더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 러시아로 건너가 그 나라 주인 레닌의 호의를 마다할 수 없었던 신분이었다. 그런 그분들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며 비난할 수 있을까? 그때 대한민국은 그들이 비빌 언덕이라도 되어주지도 못했으면서도 말이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비난 장군 이야기 동포 이야기 북경행 비행기

2023-11-10

[살며 생각하며] 맞춤형 자녀교육 - 주도형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같은 부모에게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를까 의아하다 못해 신비한 적이 많다. 나의 두 아들도 완전 극과 극이다. 작정을 하고 반대로 만들어도 이렇게 만들 수 없을 정도다. 적성뿐 아니라, 친구 생활, 대화 방식, 심지어 신앙 스타일까지 다르다. 정치적으로도 하나는 열렬한 공화당, 하나는 철저한 민주당이라 선거철마다 엄마는 괴롭다. 서로 그쪽 후보를 찍으라고 선거운동을 하는 탓에, 마음 약한 이 엄마는 자기 맘대로 투표를 하곤, 그들의 후보를 찍었다고 하얀 거짓말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딴엔 공평하고 일관성 있게 교육한다는 생각에, 너무도 반대인 이 아이들을 같은 식으로 양육하다가 힘든 일들이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아무리 부모가 확신하는 최선의 양육 방법이라도, 기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아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때, 아이들은 괴롭고 부모들은 혼란스럽다. 한 아이에게 잘 통했던 방법이 다른 아이에게는 전혀 안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는 BC 400년경, 같은 병에 같은 약을 써도 치료 효과가 다른 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 질문으로부터, 그는 인간에게 네 가지 기질과 그에 따른 네 가지 행동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주도형인 담즙질(Dominant), 사교형인 다혈질(Inspirational), 안정형인 점액질 (Submissive), 그리고 사색형인우울질(Compliant)이다. 이 이론은 후에 계속 연구를 거듭하여 지금의 디스크(DISC) 성격유형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부모 자신의 기질과 자녀의 기질을 아는 것은 자녀를 교육하고 바른 관계를 맺는데 너무나 중요하다.     이 중 첫 번 째 기질은, 주도형이라고도 불리는 담즙질(Dominant)이다. 담즙질인 사람은 모험심이 강하고 독립적이다. 강한 의지력과 자신감으로 활동적이고 조직적이다. 어디 가든 대장 노릇을 한다. 하지만 화를 잘 내고 표현이 직선적이다. 남의 단점에 책망을 잘하며, 남을 기쁘게 하는데 무관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힘든 일에 도전하고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강한 대신, 다른 사람의 통제를 싫어한다.     이런 담즙질 기질의 주도형 자녀는 어떻게 양육하여야 할까? 먼저 이들에게는 부모가 책임 있는 일을 맡기고 좋은 지도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해보게 하는 것이다. 주도형 자녀를 지나치게 통제하면, 자녀는 내적으로 격렬한 분노를 쌓게 된다. 이런 자녀들에게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답을 하는 것이 좋다. 이들은 약속을 지키는 부모, 약간의 도전을 가하면서 개인적 성취감을 맛보도록 해주는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게 된다.   반면 이 주도형 자녀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은 권위자들, 즉 부모나 교사, 직장 상사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곳이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래서 남을 존중하고 양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가르쳐야 한다. 또한 때로는 쉼이 필요하며, 천천히 해도 된다는 것을 알도록 한다. 이런 기질 자녀들은 훗날 단체의 지도자나 어떤 일을 계획하는 일, 가르치는 일 등이 적성에 맞다.     그렇다면 자녀의 기질과 부모의 기질이 부딪힐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를 들어 주도형 자녀가 주도형 부모를 만났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나머지 사교형, 안정형, 사색형 자녀와 부모에 대한 설명은 다음 칼럼들에 계속하도록 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자녀교육 맞춤형 주도형 자녀들 맞춤형 자녀교육 주도형 부모

2023-11-08

[살며 생각하며] 하인리히 법칙과 이태원 참사

하인리히 또는 1:29:300 라는 법칙이 있다. 사고로 1명이 사망하는 데는 비슷한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에 사고를 당할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가량 있었을 수 있다는 재해예방지침이다.   1931년 Travelers 보험회사 직원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7만5000건의 재난사고를 분석하여 얻어낸 통계로 재해현장에서 교과서처럼 인용되는 가설이다.   내일은 10월 29일, 정확히 1년 전 이태원에서 꽃다운 한국 젊은이 133명, 이란 5명, 중국, 러시아 각 4명, 일본, 미국 각 2명 등 15개국 158명이 압사하고 196명이 다친참사 발생 1주기다. 이날 아침부터 이태원 일대는 핼러윈 축제에 참석하려는 각국의 청년들이 몰렸고 저녁 6시가 되면서 문제의 해밀턴호텔 옆, 길이 45m 폭 3~4m 좁은 내리막길은 세계음식거리 및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로 컨트롤 불가 상황이 몇 시간째 방치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의 저녁 10시 15분! 더는못 버틴 1~2명이 쓰러졌고 그 위로 수십 수백명이 덮치는 도미노 연쇄 깔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더러는 내장파열로 더러는 숨을 못 쉬어 산채로 죽어간 전대미문의 미개형 참사가 수도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것이다.   3주 전인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예고 없이 장벽 넘어 이스라엘을 향해 20분에 걸쳐 5000여발의 로켓포 발사와 함께 차량을 통해 민가 및 군사시설에 침투하여 1300여명을 살상하고 200명이 넘는 사람을 인질로 잡아갔다. 여기에 더하여 키부츠 인근에서 이스라엘의 전통 초막절 축제 ‘퍼노바음악제’에참석 중이던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공격 살상한 뒤 수십명을 붙잡아감으로 국제적 공분까지 자초하고 있다. 졸지에 일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가자지구 전체를 포위한 뒤 물과 전기 등 일체의 보급을 차단함은 물론 온갖 수단의 보복공습을 통해 피아 6000~7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많은 건물과 도로, 학교, 병원 같은 공공시설이 피격되면서 유엔조차 외면하는 사면초가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 구약적 전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전투의 ‘불의 고리’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다. 아브라함이 주시겠다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못 기다리고 부인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의 후손’ ‘300’이라는 잠재적 부상자를 생성시킨 것이 사단이다. 이후 끊임없는 시오니즘 운동을 통해 1948년 5월 14일 본래의 땅으로 회귀하였으나 숙명적인 1, 2, 3, 4차 중동전쟁을 벌여야 했고 이제 ‘29’에 해당하는 잠재적 핵심 부상자인 하마스 같은 독종들과 결전 중이지만 궁극적인 최후의 ‘1’을 남겨두고 있음은 지구촌 전체의 불행이다.   이태원 참사 또한 하인리히 법칙상 예외는 아니다. 12년 전, 미국이 버린 핼러윈 귀신놀음을 인구 1/4이 기독교도인 한국의 이태원에서 재점화된 것이 ‘300’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건 발생 4시간 전, 20분 간격으로 11회에 걸쳐 ‘압사’까지 경고하면서 112에 신고한 ‘29’에 해당하는 경상자들의 애끊는 호소를 당국은 흘려들었다. 그때 한 사람의 의인만 있었다면 ‘1명 아니 158명’의 생명은 지켜지지 않았을까? 안타깝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하인리히 이태원 이태원 일대 미개형 참사 잠재적 부상자

2023-10-27

[살며 생각하며] 모국어가 예쁜 우리 집

‘소통’이라는 주제로 인간 관계에 관한 힐링토크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김창옥 강사는, 청각장애자인 아버지와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어머니의 오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가운데 성장했다. 인문고가 아닌 공고를 나온 후 삼수를 거듭했어도, 들어간 대학은 ‘해병대’였다. 하지만 제대 후 혼자 성악을 공부하여 경희대 성악과에 진학할 정도로 의지와 재능이 뛰어난 분이다.     이 명강사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왔다.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졌을 때, 그는 홀로 프랑스 시골 어느 수도원에 두 주 동안 있었다. 거기서는 매일 아침, 신을 믿는 사람은 그 신과의 대화를, 안믿는 사람은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포도밭에 혼자 앉아있던 이 분은 그 때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수많은 사람에게 힐링바이러스를 전하고 소통을 외치던 그가, 자신과는 그리고 가족들과는 깊은 대화나 소통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면서 비로소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순간 눈물이 터지면서, 우울증이 안개가 사라지듯 걷힘을 느꼈다고 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새 학년을 시작한 지도 두 달이 되어간다. 매년 학년 초가 되면, 새 옷에 새 가방 메고, 새 운동화 신고, 새 학년을 맞이하러 열심히 학교에 가는 우리  아이들, 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학교에 다녀주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한번 외쳐 주자! “얘들아, 지금까지 잘 왔다. 공부하느라고 늘 수고가 많구나. 이번 학년도 우리 한번 화이팅 하자!”     김창옥 강사의 말에 의하면, 아름답게 사랑에 빠져 한 결혼의 절반이 이혼으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말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이 배우자를 찾을 때, 예쁜 여자, 멋진 남자보다는, 예쁘게 말하는 여자, 예쁘게 말하는 남자를 찾는 것이, 함께 일생 살아가는데 있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모국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모국어란 영어, 한국어, 이런게 아니라, 본인이 선택하여 구사하는 말들을 의미한다. 그는 자랄 때 부모님이 서로에게 사용했던 말들, 우리에게 했던 말들, 또한 가정 밖에서 우리가 들으며 자란 말들이 우리의 모국어가 되어, 우리 뇌의 모판에 새겨져, 우리가 일생 그것을 구사하며 살아가게 된다고 역설한다.     아이들의 일생의 모국어를 결정짓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언어라는 사실은 얼마나 엄숙한 현실인지! 자라면서 엄마에게 험한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부모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상처주는 말들을 사용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화만 나면 “나가 죽어라”는 말을 했던 자식이, 사십이 되어서도 그 말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그 부모는 알았을까?     소통에서 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말투와 표정이다. 비웃거나 차갑거나 의심하는 말투나 표정이 혹시 나의 모국어는 아닌지 점검해 보자. 이 가을에는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고마와하는 예쁜 말, 말투, 표정으로 우리의 모국어를 바꿔보자. 내 하나 하나의 말, 말투, 표정들이 아이들의 모국어를 만들어 그들을 평생 따라다닐 것을 생각하면, 아이들만 학년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정에서 ‘예쁜 모국어’를 사용하는 부모가 되는 업그레이드도 매년 일어났으면 좋겠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모국어 말투 표정들 김창옥 강사 경희대 성악과

2023-10-25

[살며 생각하며] 환경물질의 선순환이 땅의 저주를 푸는 열쇠

지난 페루 선교 여행 후 개인적으로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팀 15명의 이름으로 교회 주변에 식수한 나무들이 제대로 성장해 나갈까 해서다. 토질 자체가 워낙 풍화가 덜 된마사토인 데다 평균 강우량이 연 6.9인치에 지나지 않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곧 말라버릴 것 같아서다. 물론 일정 기간 물을 준다지만 목욕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을 생각하면 염치없는 바램이기도 하다.   토양은 모재인 암석이 풍화를 받아 잘게 부서진 조각과 이들 조각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입자로 구성된다. 그리고 입자 사이의 공간을 서식처 삼아 사는 생물 또는 미생물로 인해 토양이 분해되고 그것들이 내는 분비물과 사체들이 생성하는 합성물질이 식물성장을 이롭게 한다. 이런 혜택을 받은 식물은 광합성작용을 통해 질소를 땅에 고정하고 이산화탄소를 지상에 배출하므로 인간과 동물에게 유리한 자연환경을 조성해주면 인간과 동물은 생성물질의 소비를 통해 땅을 기름지게 하는, 먹이사슬 같은 환경물질의 선순환이 이뤄져 자연은 풍요롭고 삶의 질은 향상되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 남부대륙 곡창지대를 여행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자연과 넘치는 풍요함에 탄성이 쏟아지지만 잠시 후 국경을 넘으면 확연히 다른 생경함에 놀란다. 어떻게 같은 대륙 같은 하늘을 지붕 삼고 있는데 이쪽은 물댄동산, 저쪽은 메마르고 황폐한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선인장만 가득하단 말인가?   창세기에 인류 조상 아담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이 땅을 저주하는 장면이 있다.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철 따라 고운 열매를 소산케 했던 땅이 이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만연하면서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종신토록 땀 흘려 수고하는 죗값을 치르며 살아야 한다. 설마 땅이 하나님의 저주 대상!!! 싶지만, 한때 찬란한 가톨릭 문화를 꽃피웠던 동유럽제국이 공산화된 뒤 땅이 황폐해져 소출이 반감하더라는 어느 목회자의 증언과 해방 전 남한을 압도했던 북한이 김일성 이후 먹을 것이 부족하여 아사자를 내는 현실은, 땅조차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과거 한국 땅은 지금의 페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벌거벗은 산과 메마른 들판은 비만 오면 홍수로 인해 살던 집과 논밭이 흙탕물에 휩쓸려 가는 환경물질의 악순환이 조상 대대로 거듭되었다. 그러다 70~80년대 교회가 부흥되면서 수백만 시민이 매년 몇 번씩 5·16 광장에 모여 국가를 위해 기도하였고 1000만 교인은 새벽마다 하늘의 하나님께 매달려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그 기도와 믿음이 하늘을 감동케 했던지 몇 년이 못 가 거짓말처럼 고국 산하는 밀림처럼 변했고 논밭은 소산으로 차고 넘쳐 이제는 쌀소비를 어떻게 장려할까를고민하는 실정이다.   미국 땅도 콜럼버스 이후 백수십 년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인해 정착촌 건설에 여러 번 실패했지만 1620년 청교도가 바른 신앙 위에 나라를 세우자 땅은 소산으로 넘쳤고 인디언은 우군이 되었으며 기후는 이른 비와늦은 비를 골고루 내리는 복된 땅으로 변해 우리조차 이곳으로 옮겨왔지 않는가?   남미 페루 땅이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메마르고 황폐한 땅일지라도 소망이 있음은, 우리의 기도대로 머지않아 풍요의 땅으로 변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15그루의 우리 나무도 만차이 산하를 푸르름으로 바꿔 가는 하나의 밀알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환경물질 선순환 저주 대상 남부대륙 곡창지대 페루 선교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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