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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장막을 걷어라, 행복의 나라로

곱슬머리 간호사가 생년월일을 묻는다. 어느 쪽 눈인지 물으면서 왼쪽 눈 위에 테이프를 붙인다. 눈을 헷갈릴 염려는 없다. 의사의 실수로 환자의 성한 쪽 신장을 떼어냈다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혈압을 재니 평소보다 많이 올라가 있다.   “이 수술을 왜 하세요?” 간호사가 물었다. 나는 전에 한 백내장 수술이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 망막에 이상이 왔다고 답했다.     “처음 수술을 누가 했어요? 닥터 A가요?” “아뇨, 다른 닥터였어요.” “닥터 A는 수술 잘해요. 의사 집안이에요. 아버지도 여동생도 안과 의사예요.”     수술 5분 전, 세상에서 제일 듣고 싶은 말이 간호사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담요를 어깨에 감싼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키가 훤칠한 닥터 A가 다가왔다. 빨리 수술을 받게 돼서 운이 좋다고 말한다. 얼굴에 커버가 쓰이고 눈 하나만 노출된 듯했다. 드디어 정신이 몽롱해 온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용어를 해독하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P5, HPT 24 and 25 등등.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는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흠’하는 닥터의 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왜지? 뭐가 어려움에 부닥쳤나? 다시 의사의 톤이 빨라졌다. 어쩌고저쩌고… 나는 다시 의식 밑으로 떨어졌다.     “OK. It‘s all done!” 닥터의 목소리가 확신에 차 있다. 한 20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수술이 꼬박 한 시간 걸렸다고 말해준다.     발단은 몇 년 전 백내장 수술로 거슬러 간다. 수술하던 중에 갈아 끼운 렌즈 뒤 표면에 점액질이 달라붙었다. 거기다가 렌즈가 눈동자 살짝 옆으로 비켜서 박혔다. 시간이 지나자 말라붙은 점액질이 눈에 장막을 드리웠다. 빗나가서 박힌 렌즈는 세상을 이중으로 보이게 했다. 마치 물속에서 사물을 보는 듯이 눈이 어른거렸다. 나는 내 눈이 답답함을 감지 못하도록 더 어둡게 만들었다. 항상 선글라스를 꼈다. 어둠에 익숙한 두더지 같은 눈을 가지고 다른 쪽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무엇을 응시하는 것이 피곤했다. 흐린 시야에 갇힌 나는 기분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외롭고 믿지 못할 세상이었다. 닥터 A는 이런 눈으로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음날 체크 업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했다. 눈이 환해지니 마음도 환해졌다. 곱슬머리 간호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는 수술받는 동안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실력 있는’ 닥터라는 말에 혈압이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 세상은 분명 엉터리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동시에 책임감을 가지고 소신껏 일하는 닥터 A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돌아간다고 믿고 싶다. 그들의 진실하고 선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나도 따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길쭉한 버터 넛 스쿼시를 수술 전에 사 두었다. 노란 주홍빛이 감도는 호박 수프가 눈에 좋을 것 같아서다. 당근, 셀러리 등 채소를 듬뿍 넣고 넉넉하게 끓였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냄비 가득 찬 수프를 보고 있자니, 앞집 젊은 엄마가 생각났다. 최근에 아이가 아파서 마음고생이 심하다. 그 집 문 앞에 놓고 나오는데, 소파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강아지가 신나게 꼬리를 흔든다.     나의 흐릿했던 세상에 장막이 걷혔다. 이중으로 보이던 나무도 소파도 깨끗한 단선이 되었다. 나는 소경이 눈을 뜬 듯 행복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12월의 끝자락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장막 행복 백내장 수술 곱슬머리 간호사 닥터 a가요

2024-12-09

[살며 생각하며] 어금니 감사

이를 뺐다! 9월 중순 한국 가기 전, 짬뽕을 먹는데 윗어금니에 - 이 분이 치아 14번님이시라는 것은 치과에 가서 알았다 - 이상한 감각이 왔다. 설마 부러졌다고는 생각 안 했다. 약간 불편했지만, 부러졌으면 와서 고치면 되지 하며 한국에 한 달 다녀왔다.     오자마자 치과에 갔다. 35년 나를 본 치과의사는 아주 바로, 윗어금니가 부러졌다고, 고칠 수 없으니 빼고 임플란트를해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심각함 1도 없이, 왜 코리안 국수를 먹지 차이니즈 국수를 먹다가 이를 부러뜨렸냐는 농담까지! 충격에 빠져있는 내게, 썬, 이런 건 그저 루틴이야 하시는데, 아 유 키딩 미? 난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내 치아로 말씀드리자면, 어려서 건치대회까지 나간 바 있다. 물론, 순전히 초등학교 양호선생님의 독보적 사랑을 받아서였다. 〔〈【나를 우량아대회도 데리고 나가셨던 양호선생님, 당시 우량아 기준인 우람과는 거리가 먼 평균 체중 나는 바로 예선 탈락이었다. 】〉〕하지만, 시민회관 건치대회에서는 예쁘고 건강한 치아로 뽑혀 치약 한 박스를 상품으로 받았다. 치약 받아왔다고 오빠들이 놀리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나의 치아가, 대학교 때 다른 대학 회장단들과 정부 주관 여행을 갔을 때도, 그룹에서 충치 하나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던, 이 자랑스러운 내 치아에, 문제가 생겼다! 멘붕에 빠진 나를 위해, 내 치과의사는 친히 구강외과 예약을 해주셨다.     그날 저녁 마침 동료 심리치료사들 모임이 있었다. 동정과 위로를 얻을 절호의 기회였다. 만나자마자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바로, 나보다 몇살 씩 어린 이 무정한 동료들의 집단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나이에 처음 이 빼는 걸 행복한 줄 알라며, 자기들은 벌써 임플란트가 몇 개고, 치아, 잇몸 문제가 어떻고 하며 성토를 해대는데, 위로는커녕 구박만 받았다. 이분들, 심리치료사 맞으심?     다음 주 구강외과에 들어섰을 때, 주욱 늘어선 ‘연장’들을 보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한 달 정도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입안이 편안하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하고 자연스레 치아 이야기를 하게 된다. 와, 다른 사람들의 수난 스토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를 빼고 며칠 유동식만 먹다 보니, 기운이 없고 살이 빠진다. 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기본적인 상식을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임플란트 비용을 생각해보니, 우리 입속 치아 28개의 값은 거의 10만불이다!  치아 뿐이랴! 내 몸의 모든 작은 부분까지도 온전하게 자기 일을 해주는 것이 감사한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어금니 덕에 감사가 늘었다!   오늘은, 작년 가을 아들이 개척한 Vibrance Church가, 우리 집에서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고 터키를 먹는다. 작년 20명 남짓 어색하게 모였던 우리가, 일 년 동안 완전 한 가족이 되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한인 1세, 2세 다양한 35명 정도 모임을 위해 집 의자가 총출동했다.     아침, 감기 기운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거뜬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가 커피를 만든다. 은은한 커피 향이 부엌을 채운다. 밖에서는, 마지막 단풍잎을 붙잡고 있는 나무 위로 늦가을 새소리가 들린다. 이 평범한 움직임들이, 감각들이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내 몸의 모든 부분이 감사한, 내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한, 2024년 감사절이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어금니 감사 추수감사 예배 치아 이야기 치아 잇몸

2024-11-28

[살며 생각하며] 어금니 감사

이를 뺐다. 9월 중순 한국 가기 전, 짬뽕을 먹는데 윗어금니에 이상한 감각이 왔다.  이 분이 치아 14번님이시라는 것은 치과에 가서 알았다. 설마 부러졌다고는 생각 안 했다. 약간 불편했지만, 부러졌으면 와서 고치면 되지 하며 한국에 한 달 다녀왔다.     오자마자 치과에 갔다. 35년 나를 본 치과의사는 바로 윗어금니가 부러졌다고, 고칠 수 없으니 빼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왜 코리안 국수를 먹지 차이니즈 국수를 먹다가 이를 부러뜨렸냐는 농담까지. 충격에 빠진 내게, 이런 건 그저 루틴이야 하시는데, 난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내 치아로 말씀드리자면, 어려서 건치대회까지 나간 바 있다. 물론, 순전히 초등학교 양호선생님의 독보적 사랑을 받아서였다. 나를 우량아대회도 데리고 나가셨던 양호선생님, 당시 우량아 기준인 우람과는 거리가 먼 평균 체중이었던 나는 바로 예선 탈락이었다. 하지만, 시민회관 건치대회에서는 예쁘고 건강한 치아로 뽑혀 치약 한 박스를 상품으로 받았다. 치약 받아왔다고 오빠들이 놀리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나의 치아가, 대학교 때 다른 대학 회장단들과 정부 주관 여행에 갔을 때도 그룹에서 충치 하나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던, 이 자랑스러운 내 치아에 문제가 생겼다. 멘붕에 빠진 나를 위해, 치과의사는 친히 구강외과 예약을 해주셨다.     그날 저녁 마침 동료 심리치료사들 모임이 있었다. 동정과 위로를 얻을 절호의 기회였다. 만나자마자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바로, 나보다 몇살 씩 어린 이 무정한 동료들의 집단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나이에 처음 이 빼는 걸 행복한 줄 알라며, 자기들은 벌써 임플란트가 몇 개고 치아, 잇몸 문제가 어떻고 하며 성토를 해대는데, 위로는커녕 구박만 받았다. 이분들, 심리치료사 맞으심?     다음 주 구강외과에 들어섰을 때, 죽 늘어선 ‘연장’들을 보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한 달 정도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입안이 편안하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치아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수난 스토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를 빼고 며칠 유동식만 먹다 보니, 기운이 없고 살이 빠진다. 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기본적인 상식을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임플란트 비용을 생각해보니, 입속 치아 28개의 값은 거의 10만불이다.  치아뿐이랴. 내 몸의 모든 작은 부분까지도 온전하게 자기 일을 해주는 것이 감사한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어금니 덕에 감사가 늘었다.   오늘은 작년 가을 아들이 개척한 Vibrance Church가 우리 집에서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고 터키를 먹는다. 작년 20명 남짓 어색하게 모였던 우리가, 일 년 동안 완전 한 가족이 되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한인 1세와 2세 등 다양한 35명 모임을 위해 집 의자가 총출동했다.     아침에 감기 기운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거뜬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가 커피를 만든다. 은은한 커피 향이 부엌을 채운다. 밖에서는, 마지막 단풍잎을 붙잡고 있는 나무 위로 늦가을 새소리가 들린다. 이 평범한 움직임들이, 감각들이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내 몸의 모든 부분이 감사한, 내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한, 2024년 감사절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어금니 감사 추수감사 예배 치아 이야기 치아 잇몸

2024-11-27

[살며 생각하며] 고물상

비행기로 세 시간 걸렸다. 오랜만에 여행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양 떼같이 순한 구름이 느릿느릿 가고 있다. 짧은 단발을 뒤집어쓴 야자수가 서 있다. 집 떠난 지 여섯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속이 매슥거렸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냉면을 준비하여 점심으로 주었다. 나는 맛있게 먹었다. 조금 있으니,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배추김치와 무청 김치가 있었다. 우리가 온다고 친구가 주문한 것 같았다. “남편이 여기 오더니 한식을 너무 찾아.” 생전 안 먹던 굴젓, 청국장 등등 먹고 싶은 게 많아졌다고 한다.     친구의 집은 호텔처럼 정갈했다. 물건 하나하나에 눈이 갔다. 마늘, 생강 으깨는 대리석 절구는 소꿉 장처럼 아기자기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치이익 소리 내며 진한 커피를 뽑아냈다. 목욕탕에 걸린 흰색 수건은 두툼했고 비누는 로즈메리 향이 났다. 이불은 가볍고 시원했다. 친구가 부엌을 정리하는 시간은 나보다 2배쯤 많았다. 그릇이 찬장 안으로 들어가고 바닥에 먼지 하나 없는 상태에서 부엌 불이 꺼졌다.     나는 두고 온 우리 집이 생각났다. 오래된 물건이 쌓여 있는 고물상 느낌이다. 수건도 이불도 깨끗하게 빨기만 해서, 원래의 색은 도망갔다. 부엌 용품들은 멋대가리 없이 크고 평범하다. 파트가 고장 나도 끝까지 버티면서 사용하는 편이다. 친구는 삼 년 전에 살던 곳을 훌훌 털고 따뜻한 이곳으로 이사 왔다. 쓰던 물건은 버리고 상자 12개만 들고 간 그녀의 용기와 결단력이 부러웠다. 그녀의 집은 현대에 어울리는 가구와 주방용품으로 꽉 차 있다. 갑자기 나의 물건들이 나의 고착된 삶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식을 그리워한다는 친구 남편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갔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파육이다. 오기 이틀 전에 삼겹살을 졸여서 진공 포장을 해서 얼렸다. 얼려온 동파육을 친구의 찜기에서 쪄냈다. 고기는 다시 부드러워졌다. 파와 고추와 양상추 채를 썰어서 접시에 같이 놓았다. 친구 남편은 식탁에 오른 푸짐한 음식을 보고 와인병을 서둘러 땄다. 네 사람은 와인 잔을 부딪치며 소리 높여 건배했다. 은근슬쩍, 평소에 하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혹은 남편에 대한 불평도 한 마디씩 튀어나왔다. 남쪽 나라의 열기 탓인지 친구와 같이 있다는 흥분 탓인지,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나는 문득 우리 부부가 오래된 물건처럼 살고 있지 않은지. 낡은 수건을 빨고 또 빨면서 살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 들었다. 내 집 부엌에 버티고 있는 고장 난 프로세서도 생각났다. 포크를 끼우면 기계는 여전히 잘 돌아간다. 비록 흠집이 생기고 육중한 프로세서지만, 버리지 못한다. 아이들이, 손주들이, 지인들이 놀러 와서 수도 없이 앉았던 부엌이다. 그들이 재잘거리며 기다리는 동안, 가스레인지 위에서 손녀가 좋아하는 일본식 두부를 튀겨내기도 했다. 잘 씹지 못하는 육촌 시숙을 위하여 흐물거리는 해물잡탕을 만들기도 했다. 부엌 살림살이는 내가 수많은 음식을 만들도록 조수 노릇을 해주었다. 그들은 이제 나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그들을 친정엄마만큼 의지하는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기계도 새것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원래의 빛나던 광택이 다 달아났지만, 오늘도 묵묵히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남편들은 어느새 자러 들어갔다. 친구는 뉴욕에 두고 온 친구들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뉴욕의 단풍이 그립다고 한다. “내년에는 네가 올라와. 단풍 구경하러” 나는 말했다. 우리는 졸면서도 늦도록 이야기했다. 밤사이 우웅 하는 바람 소리가 창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고물상 친구 남편 부엌 살림살이 부엌 용품들

2024-11-19

[살며 생각하며] 산인가 사막인가

2007년 봄 방학, 남편의 아이보리 코스트 집회에 동행했다. 그곳 일정을 끝내고 건너간 가나에서 제일 먼저 엘미나 노예 성을 방문했다. 그러고 나서 하루를 머물었던 Busua 비치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Shifting Sands)’의 저자인 스티브 도나휴가, 이십 대에 그저 ‘따뜻한 해변을 찾아’ 내려가다 사하라 종단 후 도착한 바닷가였다.     이후 이혼이라는 뜻밖의 사막을 걷게 된 사십 대의 그는 삶을 사막으로 표현한다. 인생이 단기적으로는 산꼭대기를 목표로 올라가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목적지가 불분명한 사막을 걸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는 그의 생각은 살수록  공감이 간다.     그 책에서 설명하는 사하라 사막 여행 당시 도움이 되었던 여섯 가지 방법은 이렇다. 1. 지도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라 (Follow a compass, not a map)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Stop at every Oasis)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When you are stuck, deflate tires) 4. 혼자서, 함께 여행하라 (Travel alone together)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라 (Step away from your campfire)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Don’t stop at false borders)   이 책을 요즘 금요 독서모임에서 읽기 시작했다. 사막을 건너는 첫째 방법은, 지도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라 (Follow a compass, not a map)는 것이다. 살다 보면 따라가던 지도가 맞지 않는 순간을 만난다. 목적지인 산봉우리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때, 누구라도 길을 잃는다. 특히 모래 폭풍 한 번만 지나가면 왼쪽 모래 산 언덕이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사막에서는 지도가 무용지물이다. 인생도 그렇다. 그래서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을 따라가야 한다.   저자가 이혼이란 뜻밖의 사막을 만나, 따라가던 지도가 무의미해진 순간, 그는 자기 안의 나침반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아이들과 전보다 오히려 더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고 나침반이 말해주었다. 이후 일 년 반을 그는 매달 열흘씩 아내가 이사한 12시간 넘게 걸리는 그곳에 가, 저렴한 방을 빌려 아이들과 살았다. 음식을 해주고, 학교를 보내고, 아들의 축구 게임을 지켜봤다. 이 침대 저 침대 뛰며 놀다 시끄럽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아이들과 그보다 더 가까워질 수는 없었다. 나침반을 따랐을 때, 하루하루가 살아났다. 당시 그의 삶의 목적을 찾아준 것은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마음속 나침반이었다.     이처럼 변화무쌍 예측 불가한 사막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도, 내면의 나침반은 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지난주, 독서모임에서 함께 우리 마음의 나침반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나누었다. 매 순간을 음미하고 마음을 챙기렴,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해, 자신을 잘 돌보자, 좀 인내심을 가져보자, 이렇게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하루하루 살다 보면, 오아시스도 만나고 목적지에도 도달하게 된다.   때로는 방황 같아도,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 보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따라가던 지도는 좀 접어놓고, 내 안의 나침반을 좀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가을이 깊어간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사막 사하라 사막 사하라 종단 아이보리 코스트

2024-11-13

[살며 생각하며] 산인가 사막인가

2007년 봄 방학, 남편의 아이보리코스트 집회에 동행했다. 그곳 일정을 끝내고 건너간 가나에서 제일 먼저 엘미나 노예 성을 방문했다. 그러고 나서 하루를 머물었던 Busua 비치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Shifting Sands)’의 저자인 스티브 도나휴가, 이십 대에 그저 ‘따뜻한 해변을 찾아’ 내려가다 사하라 종단 후 도착한 바닷가였다.     이후 이혼이라는 뜻밖의 사막을 걷게 된 사십 대의 그는 삶을 사막으로 표현한다. 인생이 단기적으로는 산꼭대기를 목표로 올라가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목적지가 불분명한 사막을 걸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는 그의 생각은 살수록  공감이 간다.     그 책에서 설명하는 사하라 사막 여행의 여섯 가지 방법은 이렇다. 1. 지도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라 (Follow a compass, not a map)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Stop at every Oasis)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When you are stuck, deflate tires) 4. 혼자서, 함께 여행하라 (Travel alone together)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라 (Step away from your campfire)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Don‘t stop at false borders)   사막을 건너는 첫째 방법은, 지도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살다 보면 따라가던 지도가 맞지 않는 순간을 만난다. 목적지인 산봉우리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때, 누구라도 길을 잃는다. 특히 모래 폭풍이 지나가면 왼쪽 모래 언덕이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사막에서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인생도 그렇다. 그래서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을 따라가야 한다.   저자가 이혼이란 뜻밖의 사막을 만나, 따라가던 지도가 무의미해진 순간, 그는 자기 안의 나침반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아이들과 더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나침반이 말해주었다. 그 후 그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 방을 얻어 일 년 반 동안 매달 열흘씩 아이들과 지냈다. 음식을 해주고, 학교를 보내고, 아들의 축구 게임을 지켜봤다. 이 침대 저 침대 뛰며 놀다 시끄럽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나침반을 따랐을 때, 하루하루가 살아났다. 당시 그에게 삶의 목적을 찾아준 것은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마음속 나침반이었다.     변화무쌍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도, 내면의 나침반은 늘 방향을 제시해 준다. 매 순간을 음미하고 마음을 챙기자,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자신을 잘 돌보자, 좀 인내심을 가져보자, 이렇게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하루하루 살다 보면, 오아시스도 만나고 목적지에도 도달하게 된다.   때로는 방황 같아도,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 보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따라가던 지도는 좀 접어놓고, 내 안의 나침반을 좀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가을이 깊어간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사막 사하라 사막 사하라 종단 아이보리코스트 집회

2024-11-13

[살며 생각하며] 911이 아니라 988

지난 칼럼에서 다루었던 빅토리아 이 사건이 요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한인들을 위주로 여러 번의 시위들도 있었는데, 수사도 더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911 전화의 70%를 차지하는 정신건강 위기 상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대응이 정책적으로 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은 가까운 사람이 정신 건강 위기를 겪을 때보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소개한다.     먼저 988 정신건강 핫라인이다. 정신건강 문제로 위기상황이 될 때 무조건 911에 연락할 필요는 없다. 988 핫라인은 2022년 전국적으로 자살이나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된 핫라인이다. 전화나 문자, 혹은 988lifeline.org에서 채팅으로도 가능하다. 988에 연락하면 훈련된 정신건강 카운슬러와 연결되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를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 988 핫라인은 현재로써는 영어와 스페인어만 되지만 통역을 요청하면 랭귀지 라인을 통해 가능하다. 자신만 아니라 걱정되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연락할 수 있다. 안내 멘트 도중 아무 때나 0번을 누르면 카운슬러와 연결된다. 재향군인은 1, 스패니시는 2, 성소수자들은 3을 누르면 전문 카운슬러와 연결된다. 물론 이 콜을 실행하는 지역별로 어느 정도 서비스가 가능한지의 차이는 있겠지만, 뉴저지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주 단위로 실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단점은 전화 거는 사람의 거주 지역적, 동네별 특성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경우, 이곳의 지역적 특성을 잘 알고 도와줄 수 있는 케어플러스의 201-262-HELP(4357) 핫라인이 있다. 이것은 비영리 정신건강 단체인 케어플러스 뉴저지의 정신건강 응급프로그램, PESP(Psychiatric Emergency Screening Program) 번호다. 이 프로그램은 자살 충동, 자해 또는 폭력성 등의 정신건강 위기를 겪고 있는 성인이나 미성년자들이 전문가의 도움으로 위기상황을 진정시키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비상시 경찰과 함께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먼저 정신건강 전문가를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상황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빅토리아 이 사건 같은 비극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신건강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병원에 입원할 의사가 있다면, 여기에 전화하면 입원할 수 있도록 연결을 해준다. 그러나 당사자가 ER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본인이 들을 수 없도록 다른 방에 들어가서 전화를 해야 한다. 상황이 긴급하면, 본인과 주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경찰이 먼저 방문하여 상황을 진정시키도록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훈련되고 자격증이 있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경찰과 함께 간다. 가서 위기 상황에 있는 성인이나 미성년자의 상태를 먼저 진단하고, 입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 하에 입원을 도와준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이 케어플러스에서는 입원은 아니라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과 처방을 제공한다. 한국어로 상담이 필요하면 201-265-8200, ext. 5280으로 걸어 한인 프로그램인 KAOS(Korean American Outreach Service)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정신건강 응급프로그램 정신건강 전문가 정신건강 위기

2024-10-30

[살며 생각하며] 새벽은 오고야 만다

  피를 철철 흘리는 아이를 안고 아버지가 뛴다. 히잡을 두른 여인은 아이 대신에 자기를 죽이라고 군인에게 절규한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아파트도 무너졌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뉴스가 나온다. 나는 체한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해 온다. 철나고 평생 들어왔던 팔레스타인 문제다. 평소에 무심히 넘겼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작년 10월부터 뉴스를 지나치지 못했다. 거리마다 죽음이 무더기 휴지처럼 뒹굴었다. 흰 포대 속에 싸인 자들이 내다 만 신음이 나를 뚫고 들어왔다. 그것은 쉬지 않고 떨리는 진동 소리로 변하여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분노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이 몰려왔다.     이 땅은 원래 누구 것인가? 왜 땅 하나에 두 나라가 들어가 있는가? 영국 정부에서 1917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 팔레스타인 땅 전체가 아닌 ‘일부’에 수립을 지지한다는 선언이다. 문제의 소지는 그때부터 있었다. 전 세계에서 흩어져 있던 유대인은 자치 국가의 꿈을 안고 이주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이 선언을 할 당시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 아니었다. 아랍인 70만 명이 이미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이주 초기에 아랍인과 유대인은 친구처럼 잘 지냈다. 저녁이면 텐트에서 술을 나누면서 덕담을 하는 좋은 이웃이었다.   1948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 신탁통치를 끝냈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선언하자, 네게브 사막 근처에서 이집트와 말썽이 생겼다. 이것이 1948년 1차 중동 전쟁의 시작이다. 몇 차례 전쟁을 겪는 동안에 대부분의 땅이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서안, 가자 혹은 주변국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근거는 무엇일까? 세 가지 담론이 있다. 약속된 땅 가나안의 회복 담론이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선조가 지나갔던 가나안을 되찾는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황무지 개간 담론이다. 낙타를 데리고 사막을 더욱 황폐하게 하는 베두인에게 이 땅을 버려둘 수 없다.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서 흩어진 유대인을 다시 모은다는 생존권이 걸린 담론이다.     글을 쓰고 있는 새벽에 문자가 들어왔다.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강의하는 전승희 교수님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쉬블리가 2024년 아시아 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이다. 나는 ‘교수님 축하드려요’ 라고 답했다. 전 교수는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을 한국어로 번역한 분이다. 소설은 양쪽의 입장에서 서사를 펼친다. 이스라엘 점령군 장교와 팔레스타인 지식인 여성의 입장에서 각각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 쉬블리는 선제공격이 어떻고 하는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고 강조한다. 지금의 현상을 고슴도치를 삼킨 뱀에 비유했다. 뱀이 너무 절박한 나머지 앞뒤 사정 보지 않고 사막에 어슬렁거리는 고슴도치를 삼켰다. 삼키고 나서 아뿔싸 한다. 고슴도치의 가시가 뱀의 목에 걸려서 내장을 찌른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뱀과 고슴도치는 둘 다 서서히 죽어간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학자, 과학자 등 지성인들이 탈 이스라엘을 하고 있다. 산업은 성장을 멈추었다.     끝없는 보복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양측 지도자가 ‘너희는 값을 치를 것’이라는 보도가 화면에 붉은 고딕체로 나온다. 구호물자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목숨으로 값을 지불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은 거대한 죽음의 용광로가 되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원혼이 그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저 어둠이 언제쯤 걷힐까? 나는 검은 연기가 배회하는 화면 속의 하늘을 쳐다본다. 그래도 새벽은 오고야 마는 것 아닌가?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새벽 팔레스타인 신탁통치 팔레스타인 지식인 팔레스타인 영토

2024-10-22

[살며 생각하며] 빅토리아 이

지난 7월 28일 뉴저지 포트리에 살던, 정신건강 질환을 겪고 있던 빅토리아 이씨가, 911콜을 받고 출동한 포트리 경찰 토니 피킨슨 주니어의 총격으로 26살 짧은 생을 마감했다. 주 검찰에 의해 사건 피해자 신원이 밝혀진 것은 무려 일주일이 지난 8월 5일이었다. 내가 한참 신나게 북클럽 회원들과 아이슬란드 여행을 즐기고 있었을 때쯤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8월 16일 공개된 바디캠 영상을 처음 본 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물통을 안고 자신을 방어하려는 작은 체구의 빅토리아와 강아지를 안고 있던 역시 작은 체구의 엄마,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하는데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경찰,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발사된 총에 맞아 쓰러지는 빅토리아, 울부짖는 엄마, 쓰러진 그녀를 복도로 질질 끌어 응급조치를 시도하려는 경찰들의 영상은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문 앞에 도착한 경찰들은, 아직도 그녀가 칼을 들고 있는지 복도로 나온 오빠에게 전혀 묻지 않았을까. 아파트 안의 상황이 현재 어떠한지, 가족 안전이 위협되는 상황인지 다시 한번 확인도 안 한 채 왜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물통을 안고 문 뒤에 서 있던 작은 아시안 여성에게, 테이저건도 아니고 실총을 쏜 것일까.     하지만 사건 직후 커뮤니티는 너무 고요했다. 내가 일하는 케어플러스의 한인 상담 프로그램(KAOS)의 한인 심리치료사 3명과 수퍼바이저는 우리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미팅을 두 번 가졌다. 그리고 이어 참석한 8월 22일 한인동포회관에서의 모임, 정성껏 저녁 도시락까지 마련하여 AAPI가 마련한 이 미팅에는 겨우 삼십여명의 주로 젊은이들이 모였을 뿐이었다. 한인보다 오히려 타인종들이 훨씬  많았다. 이제 911에 무서워 연락할 수가 없다, 포트리 경찰을 신뢰할 수가 없다, 더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 모두가 입을 모았다. 요즘 포트리에서는 시위와 시의회 참여 발언 등 진상 규명과 사후 대책을 위한 움직임이 훨씬 활발해졌다.     NAMI(미국 정신건강 협회)에 의하면, 2015년 이후 경찰에 의해 사망한 5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이고, 매년 약 200만 명의 정신질환자들이 감옥에 구금되며, 수백만 명 이상은 응급실에서 보내지지만 적절한 대처를 못 받는다고 한다. 911콜의 70%를 차지하는 정신건강 이슈와 관련된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일반 긴급 상황과 차별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법적으로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아직은 잉글우드와 핵켄색에만 실시되는, 정신건강 위기상황에는 반드시 정신건강 전문가가 동행하는 ARRIVE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의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늘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찰들을 위한 상담과 정신건강 위기상황 대응 트레이닝도 절대적이다. 케어플러스에서 제공하는 이러한 여러 타운의 경찰 트레이닝이 포트리까지는 아직 못 미쳤었던 것이 아쉽다.     며칠 후 우리 집에서 케어플러스, 그리고 다른 한인 치료사들의 작은 모임이 있었다. 다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현재 제공되는 정신건강 응급상황 관련 서비스들을 살펴보았다. 전국적인 988 정신건강 핫라인, 지역적 특성을 잘 알고 도와줄 수 있는 프로그램인 케어플러스의 201-262-HELP 핫라인, 그리고 18세 미만을 위한 핫라인인 Perform Care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을 통해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빅토리아 정신건강 위기상황 정신건강 응급상황 빅토리아 이씨

2024-09-18

[살며 생각하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

얼마 전에 여동생이 우리 집에 와서 묵었다. 그녀의 운동 루틴은 여행을 와도 여전했다. 제일 하기 싫은 것을 제일 먼저 한다고 한다. 일어나면 커피를 들고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 미국 동네는 공원 같다면서, 아침 기운을 받아 생생해진 꽃나무들을 구경하면서 걸었다. 동네 길을 구석구석 돌고 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평소에 걸어도 20분 정도가 고작이다. 걷는 흉내만 내는 나와는 달리, 동생은 진지하게 걸었다. 그만 걷자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도 따라서 열심히 걸었다. 동생은 걷기가 끝나면 스트레칭을 했다.   그녀는 두 다리를 살짝 어긋나게 겹쳤다. 팔을 위로 뻗치고 허리를 굽혀서 손을 땅에 댄다. 하늘을 향해 기원이라도 하는 듯 동작이 엄숙하다. 온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는 동생이 신기했다.     “언니 등이 굽었어.”     그녀의 움직임을 멍청히 보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그냥 서 있기도 멋쩍었다. 나도 스트레칭을 따라 했다. 두 팔을 앞으로 펴서 돌리고, 뒤로 깍지를 껴서 어깨를 펴 주고… 처음에는 중심을 잡지 못했다. 흔들리고 쓰러졌다. 엉성한 동작으로 며칠을 따라 했다. 그랬더니 뭐랄까? 허리께에 고무줄이라도 두른 것처럼 몸체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어깻죽지를 펴고 가슴을 세우니 숨이 잘 쉬어졌다.     내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운동 열심히 하는구나.’ ‘잘했어! 내가 기분 좋게 해 줄게.’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 심장일까? 뇌일까? 아니다. 이 둘은 따로가 아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면 머리가 반응한다. 몸을 움직이면, 심장이 뛰고, 뇌까지 올라간다. 뇌에서 널브러져 있던 물질이 출렁임을 받아서 게으름에서 깨어난다. 서로 같은 물질을 찾아 헤매면서 연결고리가 탄탄해진다. 뇌세포 시냅스가 두꺼워질 때, 뇌는 기운이 넘친다.     이 물질은 도파민, 세로토닌 혹은 엔도르핀이라고 불리는 호르몬이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질이다. 도파민은 뇌 속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도파민은 소량이라서 별로 기분을 좌우하지 못한다. 뇌는 혼자서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두면 게으르기 그지없다. 원시 동굴인들은 사냥을 위해서는 쉴 틈이 없었다. 온종일 뛰어다니고 나면, 뇌에서 도파민이 땀처럼 솟았다. 뇌는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다. 기분이 좋아야 사람들이 계속할 테니까 말이다.   또한 뇌는 그렇게 빨리 진화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뇌는 2만 년 전 원시인의 뇌와 비슷하다. 동굴인은 누가 나타나면 일단 먼저 활을 쏘았다. 적인지 친구인지 생각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으므로 일단 저지르고 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했다. 내가 적을 죽였는가? 우리 편을 죽였는가? 실수였는가? 반성이라는 생각은 항상 나중에 따라온다. 뇌는 행동이 먼저고 생각에 더디다. 만약 우울하다면, 머리 싸매고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걸으시라!     동생이 왜 그렇게 운동에 집중하는지 알 것 같다. 햇빛을 받으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행복 호르몬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낮에 쓰다 남은 세로토닌은 저녁에 멜라토닌으로 변하여 잠까지 잘 오게 한다니. ‘별것’ 아닌 걷기와 ‘별것’ 아닌 스트레칭을 첫 새벽부터 하는 모습에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 맞다. 나를 잘 돌보는 것….   동생은 잠깐 다니러 온 사이에 나에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돌아갔다. 선한 에너지는 전파력이 강하다.     청바지를 입고 트렁크를 끄는 동생의 뒷모습이 날씬해 보였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도파민 세로토닌 운동복 차림 운동 루틴

2024-09-16

[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2

나는 원래 자연에 완전 무지하다. 무식의 극치다. 어려선, 미안하지만, 수박도 쌀도, 나무에 열리는 줄 알았다. 생물 시간엔 매일 시만 썼다. 지금 뉴저지 사시는 생물쌤, 죄송합니다! 이리 동식물에 약하니, 책을 읽을 때도 자연 묘사 장면은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이런 차도녀, 차가운 도시의 여자 나를 자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한 것이 아이슬란드다.   일단 인구 40만도 안 되는 이 나라에는 양이 10만 마리가량 있다. 사람 네 명당 양이 한 마리꼴이다. 무수히 많은 아이슬란드 농장들은 우리가 생각하듯 농사를 짓기보다는 양, 소, 말 등을 기른다. 따뜻할 때는 방목을 하고, 추워지면 먹일 풀을 매년 2~3번까지 수확하여 건초를 만든다. 지나가다 보이는 커다랗고 하얀 치즈 덩어리 같은 것들이 다 건초 더미다. 아이슬란드가 가장 푸르를 한여름에 갔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초록색 풀밭과 산기슭에 하얀 양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모습은, 다녀와 내 꿈에 나올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또한 1000개가 넘는다는 아이슬란드의 폭포들은 각자 독특한 모습으로 빙하가 덮인 산꼭대기로부터 쏟아져 내렸다. 혼자 고고한 위엄을 드러내며 높은 데서 쏟아지는 폭포들, 빨려들 것 같은 거대하고 넓은 힘찬 폭포들도 아름다웠지만, 웅장한 한 폭포가 아니라 여러 개 작은 폭포들이 용암산을 흘러내리며 자아내는 멋진 심포니 같았던 폭포들은 더 기억에 남는다. 그 여러 개의 폭포와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신비로운 옥색 빛 계곡물은, 바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다.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은 검은색의 아름다움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며 왠지 겁나 싫어하게 되었던 검은 색, 이후 나의 최애 색깔은 파랑과 노랑이었다. 하지만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빙하 조각들로 덮인 검은 비치, 그리고 검은 라바 해안 위로 치솟아 있는 검은 빛 용암 절벽들은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저려왔다. 이젠 모든 색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내 마음도 회복되어 있음을 알게 해 준 아이슬란드 여행이었다.     나의 달링 손주들이 사진 찍어 보내 달랬던 펭귄 대신, 펭귄을 닮은 귀여운 새 퍼핀들, 그 외에도 북극해의 각종 새, 물개, 백조들이 거기 살고 있었다. 특히, 낭만이 넘치다 못해 빨간 신호등이 하트 모양인 Akyureiri라는 마을에서 배를 타고 나가 만난 여섯 마리의 험프백 고래들. 더운 카리브해나, 적도 부근에 가서 짝을 짓고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몸무게가 평균 1.5톤, 길이는 3미터가량이나 되는 새끼 고래를 어미 고래는아무것도안 먹으며 6~10개월 동안 하루 400리터 정도의 젖을 먹여 기른다. 그리고 성장한 새끼를 데리고 다시 찬 물로 올라온 엄마 고래는 새끼 고래와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고. 으앙, 왜 헤어지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고래들은 무리 지어 살기도 하지만 거의 혼자 산다는 말을 들으며, 홀로, 또 따로 사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7박 8일 투어를 마치고 레이캬비크로 돌아온 날 저녁은, 두 달 전 오픈한 아시안 식당에서 떡볶이와 장터국수를 먹은 것도 모자라, 백야로 환한 밤 10시 반 일몰을 즐긴 후, 아이슬란드 슈퍼에서 자주 볼 수 있던 불닭볶음면을 사와 밤참으로 먹으며,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지구 같지 않은, 지구 상의 보물같이 아름다운 나라, 아이슬란드, 언젠가는 오로라를 만나러 한 번은 더 가게 될 것 같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아이슬란드 러브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슈퍼

2024-08-28

[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나의 북클럽에서 여행을 다닌 지 2년이다. 여행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회원들을 위한 자연을 통한 휴식의 시간이다. 매년 2회, 겨울·봄에는 따뜻한 곳으로, 여름·가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곳을 간다. 7월 말, 얼음과 불의 나라 아이슬란드 여행을 9명이 9박 10일로 다녀왔다.     한여름이지만 우리 늦가을, 초겨울 날씨라는데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 우기라는데 방수 재킷과 방수 바지는 확실히 비를 막아줄까, 아침에 내리자마자 시작되는 투어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서 총알같이 튀어나가야 하는데, 가방 사이즈와 무게에 엄격하기로 소문났다는 아이슬란드에어 짐은 어떻게 싸야 하나, 음식이 맛은 없고 엄청 비싸다는데, 등등 가기 전부터 많은 걱정과 불안이 앞섰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역시 걱정은 미리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엄격하다던 아이슬란드에어는 사이즈와 무게가 초과한 가방들을 무료로 부쳐주었다. 공항이 아주 작아 짐 찾는데도 시간이 전혀 걸리지 않아, 투어 시작 장소인 레이캬비크의 버스터미널까지 여유 있게 도착했다. 그리고 이어 시작된 따뜻하고 유능한 가이드 요한과 시작된 7박 8일간의 링로드 투어는, 아이슬란드의 자연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치유를 안겨주었다.     대학원 후 컴퓨터 일을 하다, 아이슬란드 자연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가이드로 행복하게 사는 요한은 바이킹의 후예다. 앗, 이 젠틀한 요한이 바이킹 후예? 야만적이고 잔인한, 도끼를 든 해적의 후예? 하지만 할머니가 짜주신 15년 된 양털 스웨터를 아직도 소중히 입고 있는 요한의 설명을 통해, 해적으로 악명높은 바이킹들도 있었지만, 사실 대부분 바이킹은 농부였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 인구가 늘어나며 살기 힘들어지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아이슬란드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874년쯤부터 아이슬란드에 정식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는 바이킹들은, 그 옛날부터 민주주의식으로 매년 의회를 열어 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그들의 의회는 다른 여러 나라 의회 시스템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첫 도착한 장소가 바로 그들이 의회로 모였던 싱벨리르 공원이었다.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곳으로, 매년 2cm씩 그 간격이 벌어지며 생긴 골짜기를 따라 걸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국민소득은 한국의 두 배로, 미국과 거의 비슷한 7만3000여 달러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고, 어디서나 팁도 기대하지 않았다. 높은 36~42% 세금이지만, 무상 교육과 훌륭한 복지가 주어지는 이 나라는 루터교가 국민의 75~8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쁜 빨간 지붕 교회가 언덕에 세워져 있는 마을들이 많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오면 높은 곳에 있는 교회로 올라가게 되어있다는 설명에, 교회의 피난처적인 의미도 느껴졌다.     음식도 염려와 달리 아주 맛있었다. 특히 대구는 피쉬앤칩이든, 굽거나 찐 스타일이든, 으깨서 스튜로 했든 모두 별미였다. 양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양 수프와 고기를 즐겼고, 양고기를 못 먹는 나도 양고기 맛 핫도그는 매운 겨자 소스를 뿌리니 맛있었다. 각종 야채나 해물 수프들도 미국처럼 짜지 않고 맛깔났다. 직접 구운 호밀 빵과 직접 만든 요구르트들이 있는 곳이 많았고, 음식 맛이 전반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웠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건네준 힐링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 계속하기로 한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아이슬란드 러브 아이슬란드 자연 현재 아이슬란드

2024-08-14

[살며 생각하며] 1박 2일 캠프

손주들이 여름내 다니던 캠프가 끝났다. 며느리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머님 댁에 아이들 가도 돼요? 애들이 집에서 좀 뒹굴어도 돼요. 캠프에 가도 별로 하는 게 없어요.” 다음 주 월, 화는 우리 집에 오고, 목, 금은 외가에 가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면 일주일이 또 해결된다. 캠프 비용도 아끼고, 삼대에 걸친 결속도 좋아지고. 꿩 먹고 알 먹고. 우리 며느리는 지혜롭다.     아이들은 저녁 무렵에 천 가방을 하나씩 메고 왔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기가 무섭게 또 물었다. 정말 낚시를 가느냐고. 가려면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다. 할 거리가 있어야 했다. 안 그러면 아이들은 배터리 나간 자동인형처럼 아이패드 앞에서 동작이 멈춘다.     “우리 샌드위치 만들자. 낚시 가서 먹을 거. 가서 피크닉도 하자.” “정말? 우리가 만들어도 돼?”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으로 나갔다. 샌드위치에 넣을 상추를 8장 뜯으라고 시켰다. 이미 다 자란 상추는 뾰족한 맨드라미처럼 올라왔다. 위에는 노란 꽃이 송골송골 맺혔다. 밑둥지에 몇장 남지 않은 상춧잎을 뜯으라고 시켰다. 쉽지 않은지 몸을 굽혀서 용을 쓴다. 아이들 눈에 상추 뒤에 늘어선 늘씬한 고추들이 눈에 뜨였다. 대롱대롱 매달린 고추를 따겠다고 한다. 누가 더 큰 고추를 따나, 누가 더 많이 따나, 둘은 경쟁이 붙었다. 허리를 굽힌 아이들은 고추 덤불에 묻혀서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고추도 따야 할 판인데…   큰 애에게 개수대에서 상추를 씻으라고 했다. 상추에 물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샐러드 스피너를 꾹꾹 눌러 돌아가는 것이 재밌는지 한참을 돌린다. 작은아이는 조금만 자기가 뒷전인 듯한 낌새가 있으면 “나는?” 하고 대차게 묻는다. 나는 얼른 작은 아이에게 쟁반을 주었다. 빵을 펴서 8개로 놓으라고 시켰다. 다른 쟁반에 햄, 치즈, 상추와 토마토를 배열했다. 누구는 상추를 안 먹고 누구는 치즈를 안 먹고 누구는 마요네즈를 바르고 누구는 안 바르고… 아휴, 모르겠다. 나는 각자 샌드위치를 싸라고 했다. 작은 아이는 할아버지 것을, 큰 애는 내 것을 싸주겠단다. 오늘을 위하여 야외용 의자도 4개 샀다. 차 트렁크에 의자 싣고 낚싯대 싣고 양동이 싣고, 레디 셋 고오!   물가에서 아이들은 연신 할아버지! 할아버지! 외쳐댄다. 낚싯줄이 꼬였다고, 낚싯바늘에 옷이 걸렸다고 불러댄다. 나는 물가에서 좀 떨어진 경사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밑에 의자를 폈다. 새로 산 흔들의자에 몸을 맡겼다. 간간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호숫가에는 연 잎사귀가 짙게 드리웠다. 그 밑으로 작은 생명이 강렬한 해를 피하고 있을 터였다. 쉬는데 웬 아이들이 이렇게 떠드나 하고 구경삼아 올라올지도 모른다. 집에서 좀처럼 가지기 어려운 시간, 아이들도 나도 제각기 편안한 두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은 양동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머리를 박고 있다. 자기들 낚싯대는 팽개친 지 이미 오래다. 할아버지가 잡은 물고기에게 빵부스러기를 주고, 손으로 건드려 보고. 살아있다는 것, 반응한다는 것, 건드리면 펄쩍 튀어 오르고. 한 마리가 유달리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만히 보니 바늘을 깊게 물었는지 아가미에 상처가 났다. 다른 한 마리는 건드려도 태평한데, 아픈 물고기는 놀라 소스라친다. 물에 놓아 주었다. 잘 가라. 부디 회복하여라. 미안하다.     갈회색 빛이 도는 손바닥만 한 붕어가 낚싯대에 딸려 올 때마다 아이들은 환성을 지른다. 피쉬!! 피쉬!! 하면서. 작은 아이가 자기 병의 물을 벌컥벌컥 다 들이켰다. 빈 병에 물을 길어서 양동이 안으로 나른다. 큰애가 이름 붙인 죠오, 스키너 등 물고기 다섯 마리는 한가롭다. 나중에 놓여날 것을 아는지 별걱정이 없어 보인다. 갑자기 큰 애가 소리친다. 올챙이! 올챙이! 청록색 수면 위에 뽕끗한 움직임이 보인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오후 해는 막바지 여름을 달구고 있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캠프 캠프 비용 치즈 상추 고추 덤불

2024-08-13

[살며 생각하며] 70%만

‘몸땡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나갔던 그 주간, 내 ‘몸땡이’에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야심 찬 주 2회 필라테스, 주 2회 개인 트레이닝, 주 1회 하이킹 계획이 활기차게 진행되던, 겨우, 삼주 차였다. 몸에 탈이 나면서 필라테스, 개인 트레이닝은커녕 일주일 내내 누워 넷플릭스만 봤다. 아, 이놈의 부실한 내 ‘몸땡이!’ 또 잊고 있었다. 내가 늘 명심해야 할 70% 법칙을.     금요 북클럽 모임에서 ‘Boundaries(Cloud & Townsend)’ 책을 읽다 놀라웠던 섹션은, 뒷부분에 나오는 자신의 바운더리(Boundaries and Yourself)에 관한 챕터였다. 가족, 친구, 일, 심지어 하나님, 디지털 기기들과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으나, 나 자신과의 바운더리? 나는 나일 뿐인디? 완전 새로운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 섹션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 깨닫게 되었다. 가장 바운더리를 지키기 힘든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가장 조절이 안 되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음식이었다. 이어서, 돈을 쓰는 것, 시간을 사용하는 것,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나, 이외에도 성생활, 약물(알코올) 남용 등의 문제에 있어 자신에게 건강한 바운더리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그, 사실 이 자신과의 바운더리 문제의 대표적 인물은 바로 나다.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몸에 좋다는 음식? 싫어하는 건 죽어도 안 먹는다. 몸에 안 좋은 나의 유치한 소울푸드? 늘 과식이다. 돈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낭비가 적지 않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얻어보려 하게 만드는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이 원인이다. 시간 사용도 문제다. 워라밸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음에도 그게 안 된다. 늘 숙제를 못 마친 사람처럼, 약속을 못 지킨 사람처럼, 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캘린더가 점점 빽빽해진다.     가장 심한 문제는 체력이다. 바운더리를 무시하고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늘 몸살을 달고 산다. 이번에도 그랬다. 요즘 내 가늘어진 종아리를 보는 사람마다 나의 근육 1도 없음을 무지막지하게 걱정했다. 그 결과, 과감히 빡센 운동 스케줄을 잡았고, 역시나 바로 3주 후 또 꽈당이 온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문자가 날아온다. “존말로 할 때 가늘고 길게 가시죠,” “70%, 또 잊으셨죠?” 하고 싶은 것의 70% 정도가 내 체력의 한계임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의 워워~~.     바로 필라테스를 주 1회로 줄였다. 개인 트레이닝도 1회만 하고 사이사이 가볍게 운동하는 거로 운동 스케줄을 조정했다. 이번 기회에 나의 소울푸드도 120%가 아니라 70%만 먹고, 시간, 돈, 말도 적절한 바운더리를 유지하고 절대 과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이 ‘Boundaries’ 책의 부제는 ‘How To Say Yes/When To Say No’이다. 나를 건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는 죄책감 없이 예스를, 나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노를 하는 것이 삶의 기술이라는 주제이다. 이제부터 캘린더도 70%만 채워야겠다. 30%의 여백이 내게 가져다줄 선물들을 바라본다. 이 책을 마칠 때쯤이면 우리 모두 바운더리의 달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바운더리 문제 필라테스 개인 개인 트레이닝

2024-07-31

[살며 생각하며] 무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 더운 7월이다. 새벽에는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온다. 일어나서 뉴스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문학 거장 앨리스 먼로의 어두운 가족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 봄쯤으로 기억한다. 캐나다 작가 먼로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은 것이. 앨리스 먼로는 올해 5월에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2017년에 절필 선언을 했고, 마지막 십 년 동안은 치매를 앓았다. 그런데 작가가 죽은 지 두 달 후인 지금, 난데없이 이 문학 거장에 대한 기사가 또 나왔다. 그것도 그녀의 친딸에 의해서, 마치 어머니가 죽기를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였다. 2013년에 캐나다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녀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Dear Life)’를 읽으면서, 그 문체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캐나다의 척박한 시골에서 사는 일상인들이 등장한다. 집안일에 치여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병약한 어머니, 사양길에 접어든 농장을 운영하며 가끔 사냥하러 다니는 무뚝뚝한 아버지, 아버지의 사냥을 쫓아가서 딴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 입을 다무는 딸, 이런 시골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아들들은 키우는 말처럼 주목을 받지만, 딸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먹히는 닭과 같은 처지다. 먼로의 주인공들은 주로 여자이며, 그들은 피폐한 삶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한다. 작가의 단편을 읽고 있으면, 회고록인지 소설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날 아침, 내 눈을 끌어당긴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어떤 기자가 쓴 글이다. 기자는 먼로의 딸이 캐나다 신문에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내용을 7월 7일 자 신문에 기고했다.   ‘엘리스 먼로는 딸이 어릴 적에 이혼했다. 딸 안드레아는 친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9살 무렵에 안드레아는 어머니가 사는 온타리오를 방문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외출했을 때, 계부는 안드레아의 침대로 다가왔다. 소녀는 성추행을 당했고, 이 사실을 말했지만, 부모는 모른척했다. 어머니는 계부와 끝까지 함께 살았고, 친아버지 역시 침묵했다. 안드레아는 어른이 된 후에 상담 교사가 되었다. 자신처럼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당한 사람을 치유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현재 말 농장을 운영하면서 온타리오에 살고 있다.’       앨리스 먼로는 의붓딸을 강간한 계부의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소설 속의 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현실 속의 딸은 조금 더 용감한 것 같다. 어머니 먼로는 문학계에서 정상에 올랐다. 캐나다 최초의 노벨상 수상은 시골 출신의 소녀가 이룬 세계적인 출세였다. 안드레아는 어머니의 명성에 흠집을 낼까 봐 몇십 년 동안 비밀로 간직했다. 명상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사람들을 상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평생을 두통과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신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에다 고백하는 것이었을까? 계부도 친모도 세상을 떠난 지금,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신문 지상에 오르락 하는 것을 알 길이 없다.     무덤 속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는 먼로가 이 사실을 안다면 작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을까?     그녀의 허스키한 음성이 서늘한 새벽바람에 실려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게 사람이야, 사람이 사는 모습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같아.’ ‘어쩌면 현실이 더 소설 같을지도 몰라. 흐흐흐…’     열어놓은 창으로 나지막한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목소리 무덤 어머니 먼로 앨리스 먼로 어머니 사양길

2024-07-22

[살며 생각하며] 몸땡이

미국 친구 생일, 오랜만에 맨해튼에서 점심을 했다. 버스를 타며 역사적으로 처음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사용했다. 62세부터 디스카운트가 된다는데 아직 써본 적이 없었다. “라운드 트립 for 시니어” 라고 하니 군말 않고 4.70달러짜리 뉴욕-뉴저지 왕복표를 척 내주시는 기사님, “왓? 아 유 어 시니어? 리얼리?”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것은 물론 아니다. 나 그러면 안 되는 거 안다! 하지만, 항의 1도 없이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적용해주는 기사님을 보며, 나이를 실감한 하루였다.     이뿐일까! 아주 오래전 화장품 가게에서 내게 조심스레 아이 크림을 권할 때, 아, 난 알았다. 내 얼굴에 다크써클이 늘어가고 있구나. 평생 화장할 때, 선크림을 써본 적이 없었다. 바닷가에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아들들과 남편, 이렇게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살다 보니 이렇게 미용에 무식했다. 한 10년 전 누가 내가 선크림안 쓰는 걸 보고 경악하며 사준 후에야 선크림을 바른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별거를 다 권한다. 먹기도 바쁜 비타민C를 얼굴에도 바르란다. 바르라는 것의 숫자가 날로 늘어난다. 심지어 머리카락에도 뭔 오일을 바르고 드라이를 하란다. 아, 정말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먹으라는 보조식품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 거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얼마 전,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았다. 엄지를 못 쓰니 타이핑도 불편하고, 펜도 잘 못 잡고, 물병도 못 연다. 연약한 얼굴을 하고 열어달라고 해야 한다. 갑자기 막 왼손잡이가 된다. 의사는 트리거 핑거라고 일주일에 두 번 물리치료를 받으라며, 사용하지 말라고 조그만 캐스트를 엄지손가락에 씌워버린다. 주 네 시간을 엄지손가락 때문에 보내야 하다니, 입이 댓발은 나와서 치료하러 다녔다.     미용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내가 요즘은 ‘몸땡이’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 얼굴은 사오십대로 보이는 뽀사시한 나의 ‘젊은 늙은이’ 친구들이, 앉았다 일어설 때면, 차에 타고 내릴 때면, 아주, 아구구구 곡소리가 난다. 다들 여기저기 아픈 몸땡이를 고쳐가며 쓰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대열에 합류한 나도, 평생 주간 행사, 월간 행사로 드나들던 짐에서 이젠 개인 트레이닝까지 받는다. 필라테스도 하고, 마사지도 받는다. 필라테스, 마사지 등이 연이어 예약되어 있던 날, 감정노동으로 늘 뭉쳐있는 나의 목과 등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아유, 오늘 호강 잘하고 계시나요? 이러신다, 글쎄. 난 고문받는 사람처럼 입이 또 댓발은 나와서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행복한 투정이다. 시니어 디스카운트 나이까지 살아있는 것만도 분명 감사할 일이다. 살아있으니 처덕처덕 얼굴에 뭐도 바르는 거다. 또한 문제 많은 ‘몸땡이’지만, 살아있고 할 일이 있으니 고쳐가며 쓴다. 이런 몸을 정성껏 스트레칭을 해주고 치료해주는 분들이 있음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나이 들수록 굳어지는 것이 문제다. 몸도 말랑, 마음도 말랑해야 한다! 근육이 굳어져 몸에 문제가 생기듯, 마음이 굳어지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편협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 이제, 억울한 생각일랑 접고, 육십년 넘게 한결같이 나를 지탱해주는 내 ‘몸땡이’에 감사하기로 한다. 위로하고 사랑하고 돌보리라 결심한다. 고쳐가며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자, 오늘도 수고하는 내 소중한 몸땡이야, 아자 아자, 홧팅!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시니어 디스카운트 필라테스 마사지 시니어 리얼리

2024-07-17

[살며 생각하며] 배낭과 바위

바운더리(Boundaries), 예스와 노를 제대로 하는 건강한 바운더리에 대해 쓰고 있다. 금요 독서 모임에서 읽고 있는 Henry Cloud/John Townsend 박사님의 ‘Boundaries’의 부제는 ‘When to Say Yes, How to Say No, to Take Control of Your Life’이다. 이 책은 바운더리에 대한 원칙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의 갈라디아서 6장을 인용한다.       먼저 6장 2절에서는 “Carry each other’s burdens”라고 되어 있고, 5절에 가면 “each one should carry their own load”라고 되어 있다. 이거 서로의 짐을 함께 지라는 건지, 각자 지라는 건지, 좀 헷갈린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burden’과 ‘load’의 그리스어 원어를 살펴보면 바운더리에 대한 중요한 원칙이 보인다.     원어에서 함께 지라는 ‘burden’은 ‘excess burden’ 즉 너무 무거워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boulder(바위)’를 의미하는 반면, 5절에서 각자 지라는 ‘load’의 원어는 ‘cargo’ 혹은 ‘the burden of daily toil’을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즉 누구나 매일 감당해야 할 자기의 짐(backpack)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으며 크리스천 멤버들은 아주 혼란스러워했다. 앗, 우리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주고, 억지로 오 리를 가자면 십 리를 가주어야 한다고 배웠는데요! 이 때문에 사실 크리스천들이 더 건강한 바운더리를 못 가지고 살다가 정신적으로 관계적으로 힘들어지기가 아주 쉽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서로의 짐을 함께 져주고, 또 내 짐은 내가 져야 할 두 가지 책임이 동시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을 필요로 할 때 먼저 해야 할 것은, 그것이 그가 매일 스스로 메고 걸어야 할 배낭인지, 아니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그래서 함께 지고 가주어야 할 바위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어느 정도 크면 스스로 메어야 할 자녀의 배낭을 기어코 자신이 메어주는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강한 바운더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바위같이 무거운 마음의 짐을, 성장 과정의 짐을, 혼자 지라고 몰아치는 부모는 더 문제다. 이때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No가 아니라, Yes, 그래, 너 힘들지,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것이다.     이 배낭과 바위의 원칙은 부부에게도, 형제간에도, 친구나 직장 동료 같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내가 받는 부탁이 그 사람의 배낭인지 바위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내가 하는 부탁도 내 배낭을 메어달라는 것인지, 무거운 바위를 도와달라는 것인지 생각하고 부탁하자.     살다 보면감당하지 못할바위 같은 짐을 만날 때가 얼마나 많은지. 혼자 지고 끙끙대다 허리가 나가기 전에,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움을 청하자. 반대로, 내 배낭도 잘 못 메면서, 노를 못해 남의 배낭까지 짊어지다 보면 반드시 번아웃에 빠진다. 예상 못 한 분노가 생긴다.     바운더리 없이 예스만 하는 것이, 날 싫어하고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워서인가? 아무리 예스만 해줘도 이용할 사람은 이용만, 노를 해도 사랑할 사람은 사랑만 한다! 건강한 바운더리가 나를 지킨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배낭과 바위 배낭과 바위 excess burden 그리스어 원어

2024-07-03

[살며 생각하며] 깜짝 나들이

여름을 알리는 연휴가 시작됐다. 집에 앉아 있기가 어려울 만큼 좋은 날씨다. 남편이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쫑긋했다. 지인과 ‘네네’ 하는 폼이 심상치 않다. “상추요? 잠깐만요.” 남편이 전화를 손으로 막더니 내게 묻는다. “우리 상추 있어?” 나는 얼른 대답했다. “그것은 없지만 나물은 있어.”   벼락치기 약속이다. 두 집이 놀러 가기로 했다. 지인네는 삼겹살을, 나는 어제 뜯어 둔 미나리나물과 돌나물을 준비했다. 야호 신난다. 나가기 전에 아들에게 해피버스데이 문자를 보냈다. 오늘이 아들 생일이다. 생일 밥을 해 준다고 며칠 전에 문자를 보냈지만, 아들네는 바쁜 것 같았다. 손주들 운동 시합에 바비큐 약속까지 있다고 한다. 생일 문자를 보낸 뒤에 ‘우리도 놀러 간다’고 덧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속 보이는 것 같아서 지워 버렸다.     업스테이트 뉴욕으로 차가 달린다. 공원에는 미리 온 사람들이 콜라 캔에 소시지에 감자칩 봉지를 테이블에 펼쳐 놓고 있다. 텐트도 치고 계곡물에 의자 놓고 앉아서 발 담그고 앉은 사람, 웃통 벗고 공을 차는 아이들, 바비큐그릴에서 지글거리는 연기에 음악도 아지랑이처럼 위로 올라간다. 자기 구역이라고 고무풍선을 쭉 달아서 공중에 장식도 해 놓았다. 며칠이라도 머물 것처럼 한 살림을 차린 듯했다. 먹거리를 푸짐하게 끌고 온 사람들이 정다워 보였다.     좁디좁은 산골 길을 따라서 올라갔다. 한 명만 간신히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다. 등산복으로 무장한 어르신들이 나타났다. 우리를 보더니 ‘가방도 메지 않고 산보하듯이 오셨네’라고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손에 잎사귀 몇 개가 들려 있었다. 저 입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사람 키만 한 풀이 덮인 길이 나타났다. 뾰족하고 두툼한 가시로 무장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누가 잡아 뜯었는지 비틀어진 가지도 보였다. 어린잎이 잘려나간 자리에 새순이 나오고 있었다. 새순에도 가녀린 가시가 삐죽 나와 있었다. 어린잎이라도 제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 나무가 두릅이라고 지인이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 그분들 손에 있던 잎이 두릅이었던 것 같다.     가파른 산을 계속 올라갔다. 고즈넉한 호숫가에 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소나무들의 굵은 밑동이 하늘을 향해 일렬로 쏟아져 있다. 강한 향내가 우리 일행을 감쌌다. 갑자기 지인이 어떤 나무를 가르치며 소리쳤다. “버섯이다!” 잘둑하게 잘린 소나무에 갈색 버섯이 치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버섯은 식물처럼 보이지만 동물에 가깝다. 버섯은 나무의 유기물을 파먹고 자란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와는 달리 균류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정착한다. 몸을 내준 나무는 땅으로 돌아가고, 버섯은 자기의 독자적 삶을 산다. 자연의 질서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다시 호수를 끼고 차를 몰았다. 비취로 꾸며 놓은 곳으로 들어섰다. 광대한 주차장에 차가 촘촘히 들어있다. 마치 한국의 경포대, 부산 해수욕장에 온 것 같았다. 바다 냄새가 확 났다. 모래 장난을 하는 아이들, 튜브를 타고 물에 둥둥 뜬 사람들. 뉴저지 남쪽 바닷가까지 가지 않아도 깊은 산 속에 바다가 있다니. 많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여름을 축하하고 있었다. 아들네가 또래끼리 어울려서 주말을 즐기는 동안, 우리도 지인과 함께 즐겁게 지냈다. 마치 나무는 나무끼리 버섯은 버섯끼리 놀듯이 말이다.     세끼를 챙겨 먹으며 캄캄해질 때까지 꼭꼭 채운 일일 여행이었다. 짐을 끌고 비행기에서 내린 듯, 긴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나들이 소나무 군락지 갈색 버섯 해피버스데이 문자

2024-06-13

[살며 생각하며] 바운더리 제로 증후군

“엄마, 시간 되면 이거 좀 해줄 수 있어? 이그, 우리 아이들 존댓말을 못 가르쳐서 삼십이 넘어도 말이 이 모양새다. 어~~ 알았어. 얘야, 엄마 좀 바쁜데 소리는 차마안 나온다. 선생님, 상담 시간 좀 바꿀 수 있나요?어, 네, 알겠어요. 사실 시간 바꾸면 나 좀 힘들어진다. 하지만 벌써 내 입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사모님, 같이 식사해요! 오, 그래요. 하지만, 먹는 거보다 그냥 쉬는 게 더 좋은 때도 사실 있다. 언니, 지금 시간좀 돼요? 물어볼 게 있어요.어, 그럼. 뭔데? 거참, 지금 나 바쁜 중 아님?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이미 다 중단하고 이야기 듣고 있다. 아니, 언니 바빠, 정확히 14분 30초 후에 전화해. 이래 본 적 한 번도 없다. 난 헌신적인 엄마에다 친절한 썬 킴이니까.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걸.”   내 책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에 나오는 내 모습이다. 완전 바운더리 제로다. 바운더리는 원래 경계(선)이라는 뜻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Yes와 No를 분명히 하는 것이 건강한 바운더리다. 기질적으로, 또 사모로 오래 살았던 나는 이 바운더리에 아주 약한 사람이었다. 동료 치료사들이 “Sun has no boundaries”라고 나를 놀려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바운더리가 제로였으니까.   요즘 Henry Cloud 박사님과 John Townsend 박사님이 쓰신 ‘Boundaries’라는 책을 금요 북클럽에서 읽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When to Say Yes, How to Say No, to Take Control of Your Life’이다. 성경 구절이 많이 인용된 이 책은 한국어로는 ‘No라고 말할 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다섯 북클럽 중 거의 5년 전 시작한 가장 오래된 금요모임 회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이 변하는 사람은 바로 인도자인 나다!     이 바운더리 문제는 동반의존(Codependency) 현상과 큰 상관이 있다. 동반의존이라는 말은 원래는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자의 부모가, 힘들어하면서도 무의식중 자신의 가치를 자녀의 문제를 돌봐주는 데서 찾는 그런 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요즘은 이 말이 다른 모든 인간관계나, 일 등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일 중독도 일종의 동반의존으로 본다.     동반의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주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꼭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누구와 알고 지내는지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디까지 해주어야 할지 한계(boundary)를 정하는 게 어렵다. 인간관계에 연연한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분은 건강한 바운더리를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반의존 끼가 있는 바운더리 제로 분들, 완전 착하고, 나보다 남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힘쓰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좋은 분들이다. 하지만 그러다 자신이 힘들어지면서,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마저 생길 수 있어, 결국 양쪽 모두에게 해로운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 문제이다.     바운더리 제로이던 내가, 요즘은 상담 의뢰가 올 때, 조금 기다려야 상담해드릴 수 있다는 말도 곧잘 한다. 당장 필요하신 분에게는 한인 심리치료사들 리스트를 전해드린다. 구체적인 바운더리와 No의 미학에 대해서 다음 칼럼에 소개하도록 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바운더리 증후군 바운더리 문제 완전 바운더리 사실 바운더리

2024-06-05

[살며 생각하며] 내가 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토요일 오후, 종잡을 수 없는 봄 날씨였다. 뉴욕에 사는 친구와 함께한 갤러리를 찾아갔다. 전시실 가운데 이불 수백 개가 포개져서 천정까지 올라가 있다. 컴포터, 담요, 퀼트, 손뜨개 등 온갖 종류의 이불이 사각으로 접혀서 탑을 만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불마다 가격표보다 조금 큰 쪽지가 붙어 있다. 쪽지에는 이불을 보낸 사람의 이름과 사는 곳, 사연이 적혀있다. 콜로라도, 일리노이, 샌디에이고 등 전국에서 보내왔다. 다음은 한 쪽지에 적힌 내용이다.     ‘나의 이름은 페트리샤. 나의 엄마는 15살이 되기 전에 엄마와 할머니를 모두 잃었다. 그들은 다행히도 죽기 전에 엄마에게 크로켓 뜨개질을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슬픈 날이나 기쁜 날이나 손에서 뜨개질을 놓지 않았다. 그 후로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손뜨개 한 이불을 선물하곤 했다. 누구나 엄마의 손이불을 받으면 기뻐했다. 우리는 아이오와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다. 나는 우리 가문에서 최초로 대학에 간 영광스러운 아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기숙사로 떠날 즈음, 엄마는 밤새워 뜨개질을 시작했다. 떠날 날이 되었지만, 엄마는 한 귀퉁이를 마치지 못했다. 이불은 조금 찌그러진 사각형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부분, 엄마가 짜다가 만 그곳에 코에 대고 밤에 잠든다.’   이불을 쌓아 올린 작가 마리 와트(Marie Watt)는 세네카 인디언과 독일계통의 혼혈이다. 마리의 엄마는 어린 시절에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보내졌다. 엄마는 자신의 언어는 잊었지만, 딸인 마리에게 세네카 부족의 신화를 들려주었다. 하늘에서 한 소녀가 땅으로 떨어지던 중에 거북이가 나타났다. 소녀는 거북이 등에 타고 포틀랜드 땅에 무사히 안착했다. 마리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으로는 헝겊을 만지작 거라곤 했다. 엄마가 이어서 만들어준 헝겊 이불에 천착하다 보니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이불들을 모아서 전시하게 되었다. 아픈 친구가 죽을 때까지 덥던 이불, 쌍둥이 형제가 헤어지면서 나눠 가진 이불. 이불 틈에는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개개인의 숭고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나는 가끔 나의 부모님이 사셨던 격동기의 한국을 상상한다. 어느 날 아침 외출을 나갔다가 쓰러져 숨을 거둔 아버지가 그날 만난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이야기를 듣고 혈압이 올랐을까? 궁금한 점이 꼬리를 문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분도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무엇이라도 남아 있다면, 편지든 메모든… 침묵 속으로 영면한 사연은 알 길이 없다.     “할머니의 엄마는 어떤 분이야?” 어느 날, 8살 손녀가 뜬금없이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또 이렇게 묻기도 한다. “정말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어?” 한글 학교에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역사가 옛날이야기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역사 시간과 한국 음식 먹는 시간이 제일 좋다고 한다. 손녀는 언젠가는 한글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 또 그러고 나면, 누가 아는가. 나의 어느 후손이 미국에 건너온 선조에 관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끄적거리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내 이야기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오늘 첼시의 한 갤러리에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 한 조각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기록이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고유의 가치가 있다.     마리 와트의 이불 작품에는 ‘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나의 이야기도 변한다. (My story changes when I know your story)’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어느 먼 훗날, 책상 서랍 혹은 먼지 낀 책장 구석에서 나의 글 조각이 툭 튀어나온다면, 그것을 후손 중 누군가가 읽어본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더 알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확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이야기 역사가 옛날이야기 헝겊 이불 이불 쌍둥이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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